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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애국가 부르며 초모공작에 몸 던진 “엄기선” 83 립운동가인 오희옥(1926년 출생, 생존 애국지사) 지사 등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일본군 내의 한국 인 병사에 대한 초모(징집) 공작의 하나로 연극이 나 무용 등을 통해 적국의 정보를 수집했으며, 중 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널리 알렸다. “중국에 있는 중학교 1학년에 다닐 때인데 하루 는 선생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나서 자기소 개하라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다들 중국의 어느 성(省)에서 왔다, 강소성(江蘇省)에서 왔다고 하는 데 중국엔 28개 성이 있거든요. 나는 한국사람인 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그때 나이가 좀 들었 으면 좋았을 텐데 1학년짜리라 궁리하다가 말을 못했어요. 아버지가 뭘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독 립운동을 하신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고향이 어디냐고 자꾸 재촉해서 물어보는데 그때 저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마구 통곡만 했 던 생각이 나요.” 나라 잃고 중국 땅을 전전하던 중학교 1학년생 이었던 엄기선 지사는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하 는 중 국인 친구들을 보면서 독립운동가인 부모님의 직업 조차 말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회한을 이렇게 말 했다. 1943년 2월 무렵부터는 중경(重慶)의 임시정 부 선전부장으로 활약하던 아버지 엄항섭 지사를 도 왔다. 중국쪽 방송을 통해 임시정부의 활동 상황과 중국 내 일본군의 만행을 동맹국과 국내 동포들에게 알리는 일에 힘썼다. 또한 중국 토교(土橋)에 자리한 수용소를 찾아가 일본군 포로 가운데 한국 국적을 가진 병사들을 위문하고,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는 엄기선 지사(국가보훈부 제공) 엄기선 지사가 활동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의 단체 기념사진 (1939.4). 촬영 장소는 중국 남방 유주(柳州)의 유후공원(柳侯公園) 귀국 후 학창시절의 엄기선 지사(앞줄 오른쪽 첫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