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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시론 • 오산학교, 교육구국의 출발이었다 83 100주년 기념비에 새긴 글귀 「밝고 덕스러운 겨레 얼의 배움터」와 짝을 이루어 오산학교의 자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 남강은 1913년 3월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 문부를 졸업하고 귀국한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을 초빙하여 오산학교의 교육을 맡겼다. 이 때, 고당 은 교사로 부임하여 지리 · 역사 · 영어를 가르쳤는데, 2년이 지난 1915년 5월에 교장에 취임하여 밤낮없 이 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오산학교의 발전에 온 힘을 쏟았다. 고당은 교장이요, 교사요, 사감이요, 사 환으로서 1인4역을 수행하면서 제2세 교육에 온몸 을 바친 실천적 교육자였다. 고당 은 학생들에게 “예수님이 우리 인간 에게 주신 교훈은 ‘눈물과 땀과 피’ 임을 강조하였는데, 눈물은 동정과 사랑을, 땀은 땀 흘려 일함을, 피는 희생을 의미합니다”라고 강조하면 서, 교육에 매진하였다. 고당의 교 육열은 오산학교를 놀랍게 변화시 켜나갔다. 학생들에게 검소한 생활 을 강조하고 앞장서서 스스로 실천 함으로써 학교 전체가 검소한 기풍 으로 자리잡아나갔다. 이러한 오산 학교의 교육정신을 몸에 익히고 졸 업한 인사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발 전에 공헌한 인물이 너무나 많다. 김도태(金道泰, 1회) · 김억(金億, 4 회) · 주기철(7회) · 김홍일(9회) · 한경 직(10회) · 홍종인(11회) · 김소월(12 회) · 함석헌(13회) · 김기석(金基錫, 16회) · 이중섭(25회) · 이기백(30회) 등이 보인다.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 Herzen 교육대학교에서 명예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처장 ٠ 법과대학장 ٠ 산업 노사대학원장 ٠ 행정법무대학원장 ٠ 부총장 ٠ 총장 직무대행 등의 보직을 수행하였 다. 전공분야는 민법이며, 그중에서 특히 불법행위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 구활동을 하였다. 정년 이후에는 정심서실(正心書室)을 열고, 정심법학 포럼 대 표를 맡아서 회원들과 법학관련 학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필자 권용우 김홍일(1898~1980) 장군. 독립 · 호국 ·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영웅이다. 조만식(1883~1950) 교장  함석헌(1901~1989). 『씨알의 소리』 발행 사상가 ·   민주화운동가로유명했다.  이중섭 화가(1916~1956) 백석(본명 백기행, 1912~  1996). 오산고보를 졸업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이기백 교수(1924~2004).  한국사 연구로 명성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