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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영 당시 73세(1936년 ~ 2008년)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열아홉의 나이에 백범 김구선생 묘소에서 암살범 안두희를 응징하기로 결심하고 안두희를 10여년 동안 추적, 1965년 강원도 양구에서 육박전을 벌여 응징하기도 하였다. 1960년 국학대학(뒤에 고려대에 통합됨)재학 때는 민족통일 학생연맹 의장으로 4월혁명의 선봉에서 조국의 반외세 민족자주 통일운동에 앞장섰으며, 1975년 백범 김구선생기념사업회 상임이사,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서 인권위원장으로 재야운동에 투신하였다. 동지는 1988년 사월혁명연구소 기획위원장으로 민족민주연대투쟁에서 활약했고, 1998년 4월 혁명회로 확대 개편 이후 공동의장과 조국통일위원장으로 자주민주통일의 사월혁명 완수에 헌신적 노력을 다하였 다. 2000년 육순이 넘는 나이에 박정희 홍상 철거와 박정희 친필 탑골공원 삼일문 현판 철거 그리고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 등 후배들에게 몸소 독립운동가로서 의사 로서 통일운동가로서 열정적으로 우리 곁을 떠날 때까지 투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