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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24년 3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이동녕의 71년 험난한 생애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의 삶은 참으로 험난하였 다. 그는 1869년(고종 6년) 10월 6일(음력 9월 2일) 충청남도 천안의 연안이씨(延安李氏) 집안에서 2남 1 녀 중 맏아들로 출생했다. 1940년 3월 13일 71세를 일기로 영면의 길에 들었는데, 참으로 험난한 삶을 몸소 경험하였다. 석오는 열 살이 되던 해에 충청북도 청원군 할아버 지의 댁으로 옮겨 이 곳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하면 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1885년부터 관직으로 전직하는 아버지를 따라 경상북도 영해(寧海), 평안남 도 평양, 함경북도 원산으로 옮겨 다녔다. 그는 이 때부터 미국 · 영국 · 프랑스 · 러시아 · 이탈리 아 등 세계열강들로부터의 통상(通商) 압력, 전주 · 길 주 · 정선 · 광양 · 함창 등지에서 일어난 민란, 갑오변란 (甲午變亂) · 갑오개혁 · 을미사변 · 단발령과 항일의병, 구국과 헌신의 초지일관 생애 이동녕 신흥학교 초대 교장맡아 항일무장투쟁 기초 닦아 순국시론 석오 이동녕, 신흥무관학교에 꿈을 심다 글 권용우(단국대학교 명예교수) 격동의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련의 경험은 이동녕으로 하여금 조국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00년대 초 용정의 서전서숙 설립과 신민회 활동을 주도하였고, 1911년 6월 서간도 신흥학교 의 초대 교장을 맡아 해외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