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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23년 12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교육구국운동에 앞장서서 1907년(순종 1년) 12월 24 일 평안북도 정주에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세웠다. 남강은 가난한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일 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내면 서 납청정(納淸亭)의 어느 유기상(鍮器商)의 점원으 로 일하면서 세상에 눈떠갔다. 10여 년 뒤, 많은 재 산을 모아 큰 사업가로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 산 안창호의 연설을 들었는데, “나라가 없고서 일가 (一家)와 일신(一身)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를 받을 때 나 혼자만 영광을 누릴 수가 있겠소? 우리 가 살 수 있는 길은 삼천리 방방곡곡에 새로운 교육 을 일으켜 2천만 한 사 람 한 사람이 덕과 지식 과 기술을 가진 건전한 인격인이 되고, …… 이 민족이 영광을 회복할 수 있다”라는 대목에 크 게 감동을 받았다. 그는 집에 와서 당장 머리를 깎고, 술과 담배를 끊었 다. 그리고, 고향에 강명의숙(講明義塾)을 세우고, 청소년들의 교육에 뛰어들었다. 이것이 1907년 7 월의 일이었는데, 이에 터잡아 오산학교의 개교 로 이어졌다. 이 때, 치당(恥堂) 백이행(白彛行)을 교장으로, 여준(呂準)과 서진순(徐進淳)을 교사로 초빙하고, 학생 이윤영 · 이찬제 · 이중호 · 이업 · 김자 열 · 이인수 · 김도태 등 7명으로 개교하였다. 이 때, 교사 여준이 작사한 교가가 오늘에 전 한다. “뒷 뫼의 솔빛은 항상 푸르러 / 비에나 눈에나 변 함없이 / 이는 우리 정신 우리 학교로다 / 사랑하는 학교 오산학교” 1910년(순종 4년), 남강은 기독교에 입교하였는 데, 기독교를 오산학교의 교육정신으로 삼았다. 제 1회 졸업식에서, 남강이 행한 훈화가 필자의 가슴 에 찡하게 다가온다. “오산학교의 졸업생은 어디를 가나 어디에 있으나 거짓말을 하지 말고 남을 속이 지 말고 자기가 맡은 일을 게을리하지 말고 몸소 행 하여 민족의 영광을 높이는 인물이 되라.” 이는 개교 1911년 오산학교 중학과 제1회 졸업기념 사진 오산학교 대강당 준공식 광경 설립자 이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