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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순국 선 열 길 따 라 얼 따 라 81 독립항쟁공적 기리는 하계마을독립항쟁기적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은 퇴계종가에서 갈라져 나온 퇴 계 손자 동암 이영도의 후손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450년 동안 진 성 이씨의 집성촌으로 자리를 지켰으나 1976년 안동댐이 건설되면 서 마을 전체가 수몰되었다. 하계마을은 25명의 독립항쟁가를 배출해낸 독립항쟁의 산실로 유명하다. 특히 3대에 걸쳐 독립항쟁을 펼친 향산 이만도 가문은 안동의 독립항쟁정신을 잘 보여준다. 예안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순 국한 이만도와 이중언을 비롯하여 3.1 만세 운동에 참여한 며느리 김락,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한 아들 이중업,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 인 손자 이동흠과 이종흠 등이 대표적이다. 이 마을 독립항쟁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을 옛 터 인근에 고택들을 옮기고 2004년 독립항쟁기적비(紀蹟碑)를 세웠다. 선성의병 의병소 - 삼백당 터 선성의진(宣城義陣)의 3차 대장 이인화(李仁和)가 의병소 로 활용하였던 곳으로 안동시 도산면에 위치하고 있다. 1896 년 당시 예안군에서는 안동부와 별도로 의병이 일어났는데, 그 명칭이 선성의진이다. 선성의진은 1896년 1월 23일에 결 성된 후 모두 네 명의 대장이 취임하였다. 1차 의진은 이만도 (李晩燾)가 대장을, 이중린(李中麟)이 부장을 맡았다. 그러나 9일 만에 해산되자, 이를 다시 추슬러 2차 의진을 결성하고 대장에 취임한 사람은 이중린이다. 2차 선성의진은 호좌·풍기·순흥·영주·봉화·예천·예안 7 읍의 연합의진에 참가하고, 일본군 병참부대가 있던 상주 태봉에서 전투를 벌였다. 9월에 들어 3차 선성의진이 결성되었다. 3차 의진의 대장은 이인화가 맡았다. 이인화는 자신의 집인 삼백당(三栢堂) 에 의병소(의병본부)를 설치하고, 김도현과 활동방향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9월 6일 관군 40여 명의 기습공격으로 선성의진은 흩어지고 말았다. 이 때 의병의 본부였던 삼백당도 관군의 공격으로 말미 암아 불타고 말았다. 삼백당의 창건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1896년 안동부 관군들의 방화로 소실되었 던 것을 2011년 새로 복원하였다. 퇴계종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하계마 을독립항쟁기적비. 하계마을 독립항쟁가들 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3차 선성의진의 본부로 사용했던 삼백당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