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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⑪ 81 에 한 마을 앞에다 차를 세웠다. 그 마을은 할아버지 부하 오상렬 의병이 태어난‘가마마을’로, 마을 어귀 에 순절기념비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곧장 순절기 념비에 다가가 옷깃을 여미고 묵념을 드렸다. 곧 이 어 지난날 의병들의 무기제작소였다는 대명동산(大 明洞山) 들머리 ‘석문동천(石門洞天)’ 표지석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탓으로 그 흔적은 지워지고 말로 만 전할 뿐이라고 했다. 마침내 이른 석문산(石門山)은 지난날 치열했던 전적지라는 이미 지와는 달리, 야트막하고 예쁜 두 산봉우리가 호수에 잠겼다. 우리 는 이 산에서 일본군 총칼에 죽어 간 이름 없는 의병 혼령에게 머리 숙였다. 마지막 답사 전적지는 오 성술 의병장이 일본군에게 체포된 용문산이었다. 용문산은 그 일대 에서 가장 높기에 먼 곳에서도 빤 히 잘 보였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에 오용진 선생은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 다. 38선은 먼저 왜놈들이 만든 바, 그놈들이 괴뢰 ‘만주국’을 세 운 뒤 38선 이북은 만주국으로, 그 이남은 일본 본토로, 분할 편입하 려던 계획이 있었다고 하면서, 만 일 일본이 망하지 않았더라도 조 선 국토가 두 쪽 나는 그런 불행도 왔을 건데, 엉뚱하게도 정작 미 · 소 양국이 이를 분단시켰다고 역사의 뒷이야기를 했다. 또 다른 이야기의 하나는, 당신 가계(家系)를 이어온 이야기였다. 그 당시 의병에 투신한 대부분 전사들 은 대가 끊어져서 출계로 사자(嗣子 대를 이어 제사 를 받드는 아들)를 이어가는 집안이 많은데, 다행히 오성술 의병장은 외아들을 두었다고 했다. 용진정사 현판(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 용진정사(湧珍精舍)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