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page

순국 스크랩 • 재일한인 독립운동사의 신조명 ① 81 소 내의 사상운동 관련자를 이끌었던 사건이 주목 된다. 김천해의 말년과 평가 김천해는 일본의 패전과 함께 연합군사령부에 의 해 1945년 10월 4일 치안유지법이 철폐되어, 10월 10일 도쿄예방구금소에서 출옥했다. 그는 출옥에 앞 서 도쿠다 규이치(德田球一) 등과 함께 석방 이후를 대비했다. 그는 1945년 이후 재일조선인 운동의 구 심이었던 재일본조선인연맹을 주도하여 최고고문으 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김천해는 재일조선인 민족운동의 한 중심이었다. 그는 선진적인 재일조선인 민족운동가 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운동 단체에 연계되었다. 재일조선인의 삶은 그로 하여금 조직 활동의 중심에 서게 했다. 그리고 그는 조선공산당 4 차당 일본총국 책임비서로 활동했다. 김천해는 노동자 출신의 선진 활동가로 일본지역 에서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그의 활동을 평가 하는데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1920 년대 일본지역 당대 최고의 재일조선인 민족운동 가 로 국제주의를 실천했던 사람임은 분명하다(본고 작 성에는 김인덕, 『일제시대 민족운동가 연구』, 국학자 료원, 2002를 주로 활용함). 성균관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보훈처 연구원, 일본 와세다대 학 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일본 국제문화연구센터 외국인연구원 등을 지냈다. 이후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과장, 성균관대 동아시 아학술원 연구교수, 한일민족문제학회 회장을 거쳐 현재 청암대학교 교수 · 재일 코리안연구소 소장, 재외한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식민지시 대 재일조선인운동 연구』, 『일본지역 독립운동사 연구』, 『강제연행사 연구』, 『재 일본조선인연맹 전체대회 연구』, 『오사카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일상』, 『한국현 대사와 박물관』 등 다수가 있다. 필자 김인덕 재일본 조선인연맹 중앙총본부 전경(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일본인 역사학자 히구치 유이치의 김천해  평전 표지(사회평론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