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page


80page

정화암 생가 이 곳은 3.1운동에 참여하고 국외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정화암 선생의 생가이다. 1896년 김제에서 출생한 선생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고, 1920년 미국 의회 사절단이 내한했을 때, 일본의 침략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다 경찰의 추격을 받아 1921년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이후 이회영, 신채호 등과 교류하며 무력투쟁을 통한 광복 쟁취를 위해 폭탄 제조 기술을 습득하고 군자금 확보 방안을 강구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1928년 재중국조선 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고, 1931년에는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일본 공사관에 폭탄 투척 등 무력 항쟁을 지속하였다. 1933년 이강훈, 백정기 등과 함께 상해해방연맹을 결성하고, 1936년 남화연맹의 기관지인 남화통신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이후 임시정부의 시책에 협조하여 1940년부터 상해 방면에서 활동하며 광복군의 현지 책임자로 미·영 포로수용소의 소재지를 확인하여 보고하는 등 정보 활동에 기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으며, 2013년 선생의 생가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