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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화(吳敬和) 1862~미상/의병/건국훈장 애국장
1908년 경북 성주(星州), 경남 합천(陜川) 등지에서 권경대의진(權景大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를 빌미로 배일의식이 강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국식민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 통감부는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 력을 해체했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 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오경화는 권경대가 의병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진에 들어가, 이화집(李化執) 과 함께 권경대의 지휘를 받으며 박기장(朴己長)·여 국명(呂國明)의진과 연합하여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 하였다. 오경화는 화승총을 휴대하고 1908년 음력 6월 10일경 권경대의 지휘 아래 의병 8~9명과 함께 경남합천군 승산면(崇山面) 수전동(水田洞) 문진사(文進士)의 집에서 군자금 금30관문(貫文)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3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및 폭동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12월 21일 대구공소원에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02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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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춘근(郭春根) 1879~미상/의병/건국훈장 애족장
1908년 4월 부터 충북 충주(忠州),청풍(清風) 등지에서 김정영의진(金正永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 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8년 4월 23일 부터 김영진의 진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5월 12일 의진에 합류한 경기도 여주 출신 김봉택(金鳳澤) 등 40여 명의 의병들과 충주,청풍 등지에서 활동을 하였다. 1908년 6월 25일 구류되어 같은 해 9월 30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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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李明源) 1869~1952.10.17/미주방면/건국포장
1909년부터 1945년까지 멕시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메리다지방회, 산타페지방회, 멕시코시티 지방회(墨京地方會)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1909년 북미지방총회 산하 메리다지방회 회원, 북미지방총회 파견 대의원, 1910년 총무, 1913년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8년 데스까갈경찰소 경찰원,1920년 산타페지방회 부회장,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 산타페지방회원, 1921년 베라크루스경찰소 경찰, 1928년 멕시코시티지방회 회장, 1930년 학무, 1932년부터 1935년까지 대의원, 1938년 감찰원, 1939년 집행 위원장, 1940년 베라크루스통신처 통신원 등으로 활동 하였다. 1942년 8월 29일 국치기념일에 베라크루스 통신 원으로 기념식을 거행하며 시정청(市政廳)에 태극기를 내걸고 대한독립만세와 임시정부만세를 외쳤다. 1912년 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