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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2025년 1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의 고리가 복잡하게 얽힌 곳이었다. 그 소감을 이 글 에 다 쏟을 수 없으나 아무튼 나에게는 일본을 이해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기행이었다. 과거 우리나라가 ‘문(文)’을 숭상한 선비의 문화라 면, 일본은 ‘무(武)’를 더 숭상하는 사무라이 문화였 다. 과거 일본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나라에 노략질 을 일삼았으며, 호시탐탐 노리다가 우리가 허약해 보일 때는 지체 없이 침략해 왔다. 1592년 임진년에 그랬고, 1910년 경술년에도 다시 침략했다. 침략군 에게 자비란 있을 수 없겠지만 그들의 잔인성은 상 상을 초월한다. 일본인들은 상대를 죽이는 데 그치 지 않고, 목을 베가거나 코나 귀를 베가기도 했고, 심 지어는 왕후를 죽이고 그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날뿐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나 라가 언제든지 그 허점을 보일 때는 일본은 지체 없 이 다시 침략해 오리라는 느낌을 이번 일본기행에서 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본의 여러 역사 유적과 문화 재들을 보면서 그들의 야욕이 고양이 발톱처럼 숨겨 있는 것을 내 눈에는 보였다. 부하와 동지를 살리고 순국한 조경환 의별장 나의 호남의병 전적지 답사 순례에 조세현 광복회 특별위원은 의병 후손의 연락처를 일일이 찾아 알려 주고, 또 후손들에게 취재 협조를 당부하여 주기에 나에게는 백만 원군이었다. 이전에 의병정신선양회 주관 의병 답사에도 나는 두 차례 동행하여 많은 대 화도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들은 당신 할아버지 조 경환 의병장 일화에 감동은 매우 컸다. 1909년 음력 섣달, 대천 조경환 의병장은 광주 어 등산 사동에서 일본 헌병대의 기습을 받아 교전 중, 적탄 두 발을 왼쪽 가슴에 맞고 쓰러졌다. 그런 가운 데도 조 의병장은 품안에 간직한 의병진 명단을 일 제 헌병대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 서 조 의병장은 의병진 명단을 찢다가 생각하니 그 조각을 모으면 왜적들이 이를 알 것 같아 입으로 씹 어 삼키려다가 분량이 너무 많아 부싯돌로 태우려 하였다. 하지만 안간힘을 다해도 불이 붙질 않아서 양화(성냥불)를 구해 명단을 모두 불사른 뒤 그제야 숨을 거뒀다고 한다. 그로 인해 조 의병장 순국 후 부 하들과 동지들은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는 후환이 없 조경환 의병장이 순국한 광주 어등산 전경 일본 박물관에 소장된 일본도. 길고 날카로운 칼날이 섬뜩한 느낌을 준다(이상 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