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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2024년 9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의소 막사 터에 이르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하늘만 빠끔히 보이는 그곳은 이미 해가 졌다. 쌍산 의소 막사 터에서 간신히 기념촬영을 마친 뒤 사방 을 둘러보았다. 아주 기막힌 천연 요새였다. 앞장선 화순군 문화유적해설사 이순도 씨가 말했 다. 그곳은 구한말 의병 요람지였고,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들의 은거지로도 쓰였다고 슬쩍 귀띔했다. 뒤 따르던 양금렬 씨가 부연했다. “지난해 여름(2007. 8. 3), 이곳이 국가 지정문화 재 사적지로 지정되었습니다.” 항일 의병연구 대가 조동걸 교수는 구한말의병전 쟁시기를 전기(1894~1896. 10), 중기(1904~1907), 후기(1907. 8~1909-9. 10), 전환기(1909. 11~1915. 7), 말기(1915. 8~1918)로 나눴다. 이로 미루어볼 때 구한말 의병 투쟁기는 약 20여 년간이다. 의병전쟁에 참여한 의병의 수에 대체로 연인원 60만 명 내외요, 희생자 수는 15만 명 내외로 추산했다. 쌍산의소는 거의 완벽하게 남은 의병 전적지 그런데 막상 의병 전적지를 다녀보면 그때의 유물 이나 유적은 거의 없었다. 순천대 홍영기 교수는 그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물로는 화승총이나 진중일기 정도인데, 당시 대부분 일제에게 빼앗겨 전해지지 않습니다. 유적지 는 늘 일제에 쫓기는 의병들이 영구적인 시설을 새 로이 만들기보다는 자연동굴이나 산성, 사찰, 재실 등 이미 지어진 건물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의병만의 독자적인 유적지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 만 전남 화순 쌍산의소는 참으로 다행히 현재까지도 거의 완벽한 의병 전적지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그 점을 문화해설사 이순도 선생에게 말씀 드리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화순 쌍산의소는 워낙 궁벽한 산중이라 외부와 단절되었기에 일제도 미처 이를 파괴치 못하였습니 화순 쌍산 항일의병의 최초 결의 장소(복원 민가) 쌍산 항일의병 유적지 원경(이상 국가유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