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page


8page

무명의 빛, 비봉에 서리다 비봉면은 완주군 항일 의병활동의 중심지이자, 호남 지역 의병들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완주를 비롯해 익산, 여산, 논산, 연무 등 인근 지역과 긴밀히 연대하며 치열한 항일투쟁을 전개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일문 구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의병이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이들을 '비봉의병'이라 불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워지자, 이듬해 비봉 출신 유치복 대장은 송태식 등과 함께 150명의 동지를 규합해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일본군에 맞섰다. 자발적으로 군자금이 모이고 무기 제작이 이루어지는 등 조직적인 활동이 이어졌으며, 특히 소농리 불당골에는 사전(私錢) 주조와 무기 제작소를 세워 총탄과 화약을 생산하며 항일투쟁의 장기전을 준비했다. 1907년 2월에는 금마 헌병대를 기습해 일본군 15명을 사살하고 무기를 노획했다. 고산 가금리 전투에서는 의병 21명이 전사했으나 일본군 29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8년 연산에서는 일본군 2명을, 같은 해 고산과 은진 왕성골 등지에서는 10여 명을 사살하며 끈질긴 항전을 이어갔다. 그러나 일본군의 조직적 토벌과 무자비한 탄압, 가족을 협박하며 투항을 유도하는 심리전이 격화되면서 의병들의 전열은 점차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나라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용맹하게 싸우다 순국한 의병들이 많았다. 비봉의병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무명의 존재였지만, 그들의 희생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존엄의 뿌리가 되었다. 그 정신은 시대를 넘어 지금도 살아 숨 쉬며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과 흘린 피 위에 세워진 것이며, 그 뜻과 정신은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