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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24년 6월 Column 명사 칼럼 작은 소리 큰 울림 필자는 『순국』 2024년 1월호에 「20세기 역사 속의 갑진년과 올해의 갑진년: 올바른 선택이 나라의 앞날을 결정한다」라는 글을 쓰면서 갑진년이었던 1964년의 6·3사태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1964년 박정희 정부의 한일회담 진행에 반대하여 일어난 시민운동인 6·3사태 60주년에 즈음하여 이 운동이 지 닌 역사적 의미가 중요하므로, 이번 호에서는 자세하게 살피기로 한다. 6·3사태 60주년에 그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한다 국민 반대에도 박정희 정권 1965년 6월 한일협정 강행 외교는 민주주의와 함께 가야 한다는 교훈 남겨 글ㅣ김학준(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우리 겨레는 불행하게도 1905년 11월에 을사늑약을 당해 일제가 세운 ‘한국통감부’ 아래 살아 야 했고, 1910년 8월에 경술국치를 당해 국권을 빼앗긴 채 ‘조선총독부’ 아래 살아야 했다. 그 과 정에서, 이승만·김구·김규식·안창호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들을 비롯해 이루 열거하기 어 려울 정도의 많은 애국자가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때로는 안중근 의사·윤봉길 의사·유관순 열사 등을 비롯한 순국자들이 목숨을 바쳤음은 새삼 설명할 필요 없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1945년 8월 15일에 일제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우리 겨레는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은 남북분단으로 나타났다. 연합국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 은 미국이 점령하게 하고 북은 소련이 점령하게 한 것이다. 미국, 공산세력 견제 위해 한 · 일 우호친선 종용 여기서 중요하게 상기되어야 할 것은 일본 전체를 점령한 미국이 자신의 일본점령정책 연장선 위에서 남한점령정책을 세웠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특히 그 시점에서 미국은 아시 아태평양지역에서 자신의 국가이익에 가장 중요한 국가로 일본을 지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