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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23년 10월 Column    명사 컬럼 작은 소리 큰 울림   지난 9월 15일 대통령의 임석 아래 열린 인천상륙작전 73주년 전승 행사에 관한 보도에 접하면서, 우 선 떠오른 것은 대한민국을 구한 이 역사적 작전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한국의 특수임무대원들, 그리고 한국 인 희생자들이었다. 원래 이 작전계획을 미국 합동참모회의와 육군본부 및 국방부는 반대했다.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자칫 잘못되는 경우 미군의 희생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인천상륙작전 제73주년 전승 행사를 보며 맥아더도 중요했지만 한국인 역시 중요했다 글ㅣ김학준(단국대 석좌교수) 유엔군총사령관 맥아더 원수, 인천상륙작전 강력 추진 그러나 미국 극동군사령관으로 6 · 25전쟁의 발발 직후 유엔군의 깃발 아래 유엔군총사령관을 겸하며 미군 중심의 연합군을 이끌던 맥아더 원수는 굽히지 않고 추진해 결국 이 전쟁의 물줄기 를 크게 반전시킬 수 있었다. 이 점에서 맥아더 원수는 높이 평가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결코 잊어서 안 되는 것은 이 작전에 앞서 배후에서 은밀하게 펼쳐진 팔미도작전, 일명 엑스레이작전을 성공시킨 한국인 특수임무대원들이다. 그러면 팔미도작전이란 무엇인가? 이야 기는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맥아더 원수가 1950년 8월 12일에 대한민국해군 고문관 마이클 루시(Michael J. Lousey) 중령을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에게 보내 인천지역을 탐지하여 보고하라 고 지시한 데서 시작한다. 손 총장이 해군정보국장 함명수 소령을 불러 첩보수집의 임무를 내리 자, 함 소령은 스스로 켈로부대(KLO: Korea Liaison Office)라고 불리던 비정규군 첩보부대를 이 끌고 영흥도에 상륙해 이곳을 전진기지로 삼아 거기서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덕적도와 팔미도 등 지를 샅샅이 탐색했다. 이들은 북한군의 정황은 물론이고 인천 앞바다의 간만 차이와 수심까지 정확히 수집하고 이후 영흥도로 상륙한 클라크 첩보대에 전달했다. 클라크 첩보대는 이 정보에 기초해 팔미도 등대를 밝 힐 것을 한국 해군에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