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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⑰ 79 문(창의문)을 열었다. 곧장 대월헌(待月軒)이라는 건 물이었는데, 매천 선생이 기거하며 집필하다가 순절 한 서재였다고 하였다. 그 오른쪽에는 유물전시관이 있었고, 그 옆에는 '梅泉黃先生廟庭碑'(매천황선생묘 정비)가 서 있었다. 뒤뜰로 나가자 매천사(梅泉祠) 재실이 나왔다. 정 면에는 매천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유묵도 진열돼 있었다. 영정에 묵념을 드린 후 카메라로 열심히 담 자 김 해설사는 영정 원본을 스캔한 것을 당신이 소 장하고 있다면서 흔쾌히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쪽문으로 나가자 여염집으로, 매천 증손부가 홀로 사시는데 외출 중인 듯 기척이 없었다. 김 해설사는 그제야 매천 선생의 고손자도 순천의 한 초등학교에 교감으로 재직 중이라고 귀띔했다. 남도라 그런지 한겨울인데도 텃밭에는 마늘, 파, 배추들이 푸름을 잃지 않고 있었다. 매천사에서 바라본 언저리 산수가 빼어났다. '인 걸은 지령'이라, 산수가 좋아야 훌륭한 인물이 난다 는데, 매천은 지리산 맑은 정기를 받아 『오하기문(梧 下紀聞)』, 『매천야록』 등을 저술하며 일본제국주의, 일본 침략의 앞잡이 노릇한 친일세력, 부정부 패를 자행한 왕실과 고위관료, 탐학한 수령과 아전들의 비리 등을 준열하게 비판하였나 보다. 김 해설사는 매천사 일대 산수를 설명해 주었다. 매천사에서 노고단, 차일봉이 빤히 보였고 옛 절 천 은사(泉隱寺)도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안 내를 부탁하기에는 너무 염치없는 일이라 다음 날을 기약하며 귀가했다. 내 집에 돌아온 뒤 매천사 답사기를 쓰려는데 글 이 잘 쓰이지 않았다. 다시 김 해설사에게 부탁하여 순천 월등초등학교에 재직 중이신 황승연 교감선생 님과 통화할 수 있었다. 서로 일정을 조정한 결과, 2008년 3월 8일(토) 오후에 순천에서 홍영기 교수와 셋이 만나기로 하였다. 매천 현손을 만나다 2008년 3월 8일(토) 오후 2시, 순천 역전 한 찻집 에서 매천 현손(玄孫, 고손) 황승연 월등초등학교 교 감선생님을 만났다. 매천의 후손임을 바로 알 수 있 을 만큼 매천 영정과 똑같을 정도로 닮았다. 인사 몇 구례 매천사 대문 현판 ‘창의문’구례 매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