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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⑬ 79 서 나에게 대신 그 일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상룡 국무령의 행적을 추적하던 길에 중 국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내 고향 출신 왕산(旺 山) 허위(許蔿) 13도 창의군 군사장을 그제야 알고는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 어른의 함자도, 행적도 전혀 모 른 채 날마다 등굣길에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 길 을 지나면서 동대문 옆 창신동 뒷산이 왕산이기에 그래서 그 도로가 왕산로(旺山路)가 된 줄 알았다. 그 런 부끄러움이 나로 하여금 늦게야 독립운동사 책 을 들게 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한 인터넷신문에 올 리자, 의병정신선양회 임원들이 초대하여 호남 의병 유적지 답사 길에 동행케 돼 그 연유로 본격 호남의 병 답사 길에 나섰다. 그때 의병정신선양회 조세현 부회장과 인사를 나 눈 바 있었다. 나는 그 행사가 끝난 뒤 ‘호남 의병장’ 여러 분의 행장을 답사 취재하고 싶다고 그 안내를 부탁드렸다. 그리하여 호남의병 본격 답사 취재가 시작됐다. 조세현 선생을 비롯하여 녹천(고광순 의 병장) 후손 고영준 선생, 오성술 의병장 후손 오용진 선생, 순천대 홍영기 교수 등이 그 일을 적극 도와주 셔서 전라남북도를 6개월 동안 7차례 누빈 끝에 대 장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대체로 후손들은 기 왕이면 자기 조상을 앞 순위에 싣기를 바라고 은연 중 부탁하는데, 조 부회장은 당신 할아버지 취재를 극구 사양하면서 맨 마지막에야 응했다. 나의 『순국』 지 연재는 그새 해를 넘겨 2025년 새 해를 맞았다. 어느 어른을 새해 첫 분으로 모실까 잠 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자 ‘그래! 그 어른을 새해 첫 분으로 모시자’라는 결론이 이르렀다. 광주의 대 천(大川) 조경환(曺京煥) 의병장이시다. 일본인의 잔인성 호남의병 전적지 답사를 마친 뒤면 날마다 노트북 을 켜놓고 궁싯거리는데 한 친구가 일본규수 지방의 역사기행에 동행을 청하였다. 손전화도 재충전이 필 요하듯이, 나에게도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知彼知己 百戰不殆)”는 그 말이 떠올라, 늘 켜놓던 노 트북을 과감히 끄고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2008년 3월 29일 부산항에서 일본 하카다행 배에 올랐다. 지난날 일본 규슈 지방은 우리나라와 가장 문화교 류가 잦은 지방이요, 원의 침입과 임진왜란의 출발 지로 그동안 동양 삼국 간에 은원(恩怨, 은혜와 원수) 일본 아키츠키향토관에 소장된 중세 일본 무사의 갑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