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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⑫ 79 중군(中軍) 이철형(李哲衡) · 김수봉(金樹鳳) · 김봉 규(金奉奎) 종사(從事) 김익중(金翼中) 후군(後軍) 이남규(李南奎) · 서석구(徐錫球) 군량(軍糧) 김태수(金泰洙) · 전수용(全垂鏞, 전해 산의 이명) 총독(總督) 백효인(白孝仁) · 이석용(李錫庸) 감기(監器) 이영화(李永和) · 김치곤(金致坤) 좌익(左翼) 김창복(金昌馥) · 박영건(朴永健) 우익(右翼) 허경화(許景和) · 정원숙(鄭元淑) 포대(砲隊) 김기순(金基淳) · 성철수(成喆修) · 박도경 (朴道京) 호남창의회맹소에서는 격문을 지어 사방에 돌려 백성들의 협력을 촉구하며, 적에게 부역하는 자는 처단하고, 그 재산을 몰수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격문 끝에 평민이 일본인 한 사람을 죽이면 100냥을 주고, 순검 일진회원이 일본인 한 사람 을 죽이면 죄를 면해 주며, 두 사람을 죽이면 상금 100 냥을 준다고 첨가하여 포고하였다. 이같이 봉기한 기삼연은 그 후 호남의 무장 · 법성포 · 고창 · 장성 등지 에서 활약하였다. 그 전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끝내 못다 이룬 꿈 1907년 9월 23일, 전북 고창 문수사로 진군 중 접 근해 오는 적을 맞아 교전하여 적에게 막대한 피해 1907년 9월 기삼연 의병부대가 일본군을 격퇴한 고창 문수사 전경 한말 의사 박도경 추모비(전북서부보훈지청 제공). 기삼연의 참 모 박도경은 전북 고창출신으로 박경래·박경화라고도 했다. 항상 천자포(天字砲)를 휴대하고 다녀 박포대(朴砲大)라고도 불렸다. 1910년 2월 대구감옥에서 자결, 순국하였다. 기삼연 의병장 초상화 (한말 호남의병기념사업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