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page
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⑨ 79 지난날의 치열했던 전투지임을 알 수 있는 안내 팻 말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많았다. 동행한 문화 유적해설사나 의병 후손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의병전적지는 앞으로 한낱 전설로만 남을 처지에 있었다. 나는 내 고향 일대의 항일 인물보다 먼저 이웃 고 장 호남 벌에 창의의 깃발을 휘날렸던 의병전적지 부터 답사에 나섰다. 그게 바른 자세일 것 같았기 때 문이다. 내 집안 내 고장만 제일이라고 챙긴다면 자 칫 자기 자랑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 데 항일 의병 전적지로 가장 잘 보존된, 양회일(梁會 一 , 1856~1908) 의병장이 맹활약한 화순의 쌍산의 소(雙山義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반가운 마음에 선뜻 그곳을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화순군청에 부 탁하자 양 의병장 후손(증손) 양금렬 씨를 어렵게 전 화로 연결시켜 주었다. 그분은 당시 직장이 멀고 바 쁜 일로 여러 번 답사 날짜를 조정한 끝에 2008년 4 월 6일로 날짜를 맞췄다. 나는 그 길에 미뤄뒀던 전 북 의병장 답사취재 계획도 세운 바, 그 전날(4월 5 일) 남원의 전해산 의병장 생가와 무덤을 답사한 뒤, 다음날 화순 쌍산의소를 찾기로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출발 전날 아침, 양금렬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속 전날(4월 5일)은 한식날로 집안 어른들이 성묘하고자 마침 모두 모이기에 가능한 하루 앞당겨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래서 이미 약속이 돼 있기에 가능한 그날 오후 느지막이 서둘러 화순으로 가겠다 고 말했다. 양회일 의병부대 전적지 쌍산의소 나는 약속한 그날 남원 전해산 의병장 유적지를 둘러본 뒤 부지런히 화순군 이양버스정류장에 도착 하자 그새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초면의 양금렬 씨와 양동하 전 능주 전교, 그리고 화 순군 이순도 문화유적해설사 등 예닐곱 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처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우 리 일행은 서둘러 두 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쌍산 의소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을 출발한 지 30여 분 후, 마침내 쌍산 양회일 의병장 증손 양금렬 씨 쌍산의소 막사 터 앞에서(왼쪽부터 양회인 이양면번영회장, 양회풍 화순군 문화유적해설사, 양동하 전 능주 전교, 이순도 화순군 문화 유적해설사, 양회천 이양면전 총무계장, 양금렬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