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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독립운동가 • 채찬 · 김창균 · 장창헌 · 이춘화 선생 79 참의부에서는 무장투쟁을 최우선으로 하였으나, 점차 남만주 거주 한인 교민(僑民)들의 자치에도 관 심을 기울였다.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 체제하 에서 한인 교민들에게 의무금을 징수하여 군비에 충당하고 지방에는 경호대를 중심으로 교민들의 치안을 담당하였다. 또한 곳곳에 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자녀들의 교육에 힘쓰고, 병원을 세우는 등 교 민들의 복지에도 노력하였다. 부족한 군비를 충당 하기 위해 정미소·약방 등을 운영하고 교민들의 실 업을 장려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참의부는 이른 바 ‘독립운동 근거지’ 건설을 통한 만주 무장투쟁의 중요한 토대이자 요람으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 대일항쟁시기 한민족은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 해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은 그 방 략에 따라 외교활동·실력양성운동·무장투쟁·의열 투쟁 등 다양한 형태로 추진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일관되게 민족독립운동의 기본노선이 되었던 것은 무장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장투쟁은 한말의 의병항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의병들은 일제 의 추적을 피해 만주 각지와 연해주 등지로 피신하 여 독립군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들은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여 일제와 독립전쟁을 통해 민족독립을 쟁취한다는 ‘독 립전쟁론’의 깃발 아래 독립군기지를 건설하였고, 서북간도 지역이 그 중심이 되었다. 이들에 의해 국 내진공작전을 비롯하여 봉오동·청산리전투 등 과 같 은 일제와의 직접적인 독립전쟁이 수행된 것이다. 참의부는 통의부 의용군 출신의 군인들이 자발적으 로 임시정부에 대표를 파견하여 성립한 특별 무장투 쟁 부대라 할 수 있다. 특히 사이토 저격 사건을 비롯 한 국경지대의 항일 전투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참의 부 활동의 민족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국경시찰 중인 재등총독 일행에게 발포 」 동아일보 보도 기사 (1924.5.20, 국사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