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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패했으니 도망가자 했으나 모두 고름이 나고 부어있어 걷지 못해 혼자 떠나라 했다. 동료들과 눈물로 헤어져 그 넓은 병영의 문을 세 개나 거쳐 벗어났다. 거리에서 얻어먹고 웅크리고 자며 걷고 또 걸어 청량리에 도착하니 12월 초였다.”
황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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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공출을 피해 대학을 자퇴하고 강원도로 갔다. 해방 후 복학해 군수공장 정신대 차출이 위안부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에 대한 분노와 누군가 이 사실을 밝힐 거라는 기다림이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들만 그 참혹하고 억울한 한을 숨죽이며 혼자 안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단지 식민지 조선 여성이기 때문에 멍에를 진 것이다.
1973년 센다가꼬의 '종군위안부'가 출간되면서 나는 조금씩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1980년에는 배봉기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오끼나와 방문을 시작으로 피해자 목소리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10년 만에 친구 이효재 교수의 도움으로 1990년 11월 16일, 37개 단체들이 참여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출범한다.
일본은 증거를 대라고 우릴 무시했다.
공개 증언자를 꼭 찾아야 했다.”
윤정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초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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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무척 힘들지만 언젠가는 밝혀져야 할 역사적 사실이기에 첫 증언을 하게 되었다. 차라리 속이 후련하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살려준 것은 이 문제를 위해 싸우라는 뜻이라 생각한다.”
김학순 첫 증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