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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2025년 5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일주문에서 화엄사로 가는 길은 이른 아침 탓인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상큼하고 쌀쌀한 공기에 아 주 쾌적한 산책길이었다. 화엄천의 개울물만 졸졸 흐를 뿐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일주문에서 1킬로미 터 남짓 걷자 곧 화엄사가 나왔다. 화엄사 경내는 고 즈넉했다. 그곳 경내를 한 바퀴 돈 후 숙소로 돌아가 짐을 꾸려 구례군청으로 향했다. 구례 매천사 고근석 군례군 부군수는 반겨 맞으며 문화관광과 로 안내했고, 담당 공무원은 문화해설사 김종근씨를 소개했다. 나는 그의 차에다가 내 가방을 싣고 매천 사(梅泉祠)로 향했다. 김해설사는 당신 태어난 곳이 바로 매천사가 있는 구례군 광의면으로, 어릴 때부 터 보고 듣고 자라서 매천사에 대하여 통달하고 있 었다. 10여 분 달린 끝에 매천사에 이르렀으나 그곳 역시 고즈넉하기 짝이 없었다. 매천사 대문인 창의 문은 열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김종근 씨는 지금은 비철이라 탐방객이 없지만 설사 관광 철이라도 화엄 사나 노고단 등지에만 사람이 붐빌 뿐, 이곳은 찾는 이가 드물다고 하였다. 매천사 앞 안내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었다. 매천사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7호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이곳은 조선 말기 대학자이자 우국지사인 매천 황현(1855~1910년)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55년에 건립된 유적이다. 매천 선생은 광양 서석촌에서 태어나 고종 20년 (1883) 실시된 과거시험에 1등하였으나 시골태생 이라 하여 2등으로 조정되었다. 그 뒤 벼슬길에 뜻 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고종 25년(1888) 아버지의 명에 따라 생원시 과거 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나 혼란한 시국 과 관리들의 부패를 보고 구례로 내려와 시를 짓 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던 중 1910년 한일 합방의 비운을 통탄하며 4수의 절명시를 남기고 음독 자 결하였다. 고종 1년(1864)부터 1910년 한일 합방까지의 역 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매천야록을 썼고, 시문집 원고와 소장 서적 등이 보존되어 있다. 1962년 대 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하였다. 김 해설사는 관리인에게 열쇠를 얻어와 매천사 대 매천 생가 입구 매천 선생이 순절한 대월헌 광양에 있는 매천 사당 (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