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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린선생은 성주이씨(星州李氏)로 1883년 2월 12일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669번지 샘골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분으로 문인이자 언론인(言論人)이고, 정치인(政治人)이었는데 문인(文人) 으로서 큰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아호는 황산(凰山), 자는 영일(靈一) 필명은 봉황산인(鳳凰山人) 황산자(凰山子) 황사산인(凰士散人) 우련 (又連)등이고 도호(道號) 보암(普菴)으로 고려시대 최고인 시조시인인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의 20대 손이다. 어려서는 향리에서 여러 선생으로부터 한문을 배우다 그후 복암(復庵) 이설(李偰)로부터는 문장을,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에게서는 경학을 배운 후 성균관(成館)에 들어가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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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대한민보 주필이 되고 1910년 민족종교인 천도교에 입교후 항일운동(抗日運動)과 개화기 민족계몽(民族啓蒙)을 위한 문필활동과 언론인으로, 종교인으로 크게 활약하였는데 박학하며 언변이 좋아 당시 우리나라 3대 웅변가(雄辯家)로 회자되기도 했다. 3.1운동 때는 독립신문 주필과 발행인으로 독립선언의 취지를 널리 알리고 고취시키다가 피검되어 3년간의 옥고를 치루었다. 그 후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잡지인 개벽(開闢)의 사장으로 우리나라 여명기(黎明期) 문학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도교 교령 (敎頜) 또는 장로(長老)로서 민족의식 함양(涵養)을 위한 종교활동을 계속하였다. 1929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인 새벗을 창간하여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민족의 꿈을 갖게 하였다. 광복후 건국대업을 위하여 서산출신 제헌국회위원이 되어 헌법기초위원과 교통체신위원장 외무국방 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제2대 국회위원으로 당선되어 활약 중 불행히도 1950년 9월 28일 피납북 중 사망했다. 196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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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로는 황산집과 문장의 기초를 다지는 문장체법, 그리고 시조집 한글풍월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단편(短篇)이란 이름을 사용한 국문소설 모란봉을 비롯한 해당화하몽천웅, 가련홍, 감추풍별정우 일성천계(一聲千鴻) 등이 있고, 장편소설 사촌몽, 홍루지, 영산홍과 한문 장편소설 만강홍이 있다. 또한 한시 400여 수와 그 외에 동아,조선등 일간신문에 발표한 수 십 편의 논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