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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⑰ 77 첫째, 의병이나 독 립운동은 총칼로만  한 게 아니다. 붓으 로 맞선 것도 무력  못지않다. 매천은 최 익현 의병부대의 격 문 초고를 작성했 다. 둘째, 의병장 녹 천(鹿川) 고광순(高 光洵, 1848~1907) 의 시신을 수습하고,  약전을 집필하는 등  의병들의 죽음에 대해 극진한 찬사로 애도하여 그분 들의 희생을 높이 기렸을 뿐 아니라, 『매천야록(梅泉 野錄)』에 「의보(義報)」란을 만들어 1908년 1월부터  1910년 6월까지, 전국 의병 활동을 상세하게 수록하 여 후세에 역사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셋째, 국난을  당했을 때 선비들의 세 가지 대처 방안인 거의(擧義  의병을 일으킴), 수의(守義 초야에 묻혀 의를 지킴),  순의(殉義 의를 위하여 죽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 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는데, 매천 선생은 순 의 곧 순절(殉節 충절을 지켜 죽음)을 선택하여 후세 의 귀감이 된 분이기 때문이다. 선비, 곧 지식인의 값어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높은 도덕성에 있다. 우리나라는 불행하게 해방 후 단 한 사람도 민족반역자를 제대로 처단치 못한 결 과, 아직도 이 사회 주류는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불법에, 편법에, 표절에 지식인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고도 고개 빳빳이 쳐 들고 욕심 많게 권력까지 움켜쥐고 있다. 나는 매천 생가를 찾고자 2007년 12월 8일, 광 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광양행 버스에 올랐다. 광주 를 출발한 버스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곡성, 석곡, 주암을 거쳐 승주를 지났다. 승주 선암사 탐방과 호 남 의병전적지 순례로 서너 차례 지난 곳이라 그새 낯이 익었다. 나는 광양에 이른 뒤, 곧장 버스터미널 택시정류장에 대기 중인 기사에게 왕복 차삯과 대기 료를 주기로 하고, 매천 생가와 매천사당을 둘러보 았다. 기왕 길을 나선 김에 매천 선생이 글을 쓰시다 가 돌아가신 구례 매천사로 향했다. 출발 전, 아무래도 현지를 잘 아시는 문화관광사 의 도움을 받고자 마침 녹천 고광순 의병장 추모제 로 인사를 나눈 바 있는 고근석 구례군 부군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구례에 도착한 후 화엄사 어귀의 한 산장에 여장 을 풀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자 몸이 가뿐했다. 무리한 여정이었지만 지리산 일대는 산수도 좋고, 공기도 맑기 때문인가 보다. 세면을 마친 뒤 짐을 꾸 려 놓고 카메라만 둘러멘 채 산책길에 나섰다. 매천 황현 선생 생가 본채, 대문 별채 매천 황현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