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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③ 77 다음 답사한 곳은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북 열사기념관(東北烈士紀念館)이었다. 그곳은 일제 총 칼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국한 항일 열사를 모신 곳이었다. 일제는 조선을 강제합방한 후, 중국의 동북 삼성에도 침략하여 무수한 백성들 을 살해하고 수많은 물자를 수탈해 갔다. 당시 동북 의 군벌 정부는 부패 · 무능하여 일제에 방관 또는 도 망치거나, 아니면 굴욕적인 매국조약에 도장을 찍고 는 그 세력에 빌붙어 살았다. 하지만 당시 동북의 인 민들은 스스로 항일 전선을 만들어 일제에 맞서서 투쟁했다. 그들은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며칠 씩 굶어가며 상상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처 절한 대일 항쟁을 펼쳤다. 일제 총칼에 죽어간 사람, 철창 속에서 고문으로 죽어간 사람 ……. 해방 후, 중국 인민정부에서는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자 열사 들이 고문을 당했던 하얼빈 경찰서를 동북열사기념 관으로 만들어 항일 열사들의 영정을 세우고, 그 영 정 아래에 열사들의 유품과 행적을 기록해 모시고 있었다. 서명훈 선생은 여기에 모셔진 일백여 분 항일 열 사 가운데 허형식 · 양림 · 리추악 · 리홍광 · 박진우 · 차순 덕… 등 32분이 조선족 열사들이라고 했다. 동행한 이항증 선생이 나에게 귀띔했다. “허형식(許亨植) 열사는 박 선생 고향 분이에요.” “네?” 나는 순간 경악했다. 우리 속담에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반갑다”고 했는데, 먼 이역에서 고향 어른 을 만나다니…. 솔직히 나는 ‘허형식’이란 함자를 그 때까지 몰랐다. 뒤늦게야 문헌을 들춰보니, 허형식 은 1909년 경북 구미 임은동에서 태어난 바, 항일 의 병장으로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의 조카였다. 경북 구미 임은동 허씨 집안은 허 위 선생을 비롯하여 범산(凡山) 허형(許蘅 ) · 방산(舫 山) 허훈(許薰) · 성산 허겸(許蒹) 등이 활약한 쟁쟁한 항일 가문이었다. 특히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까지 도로 명을 ‘왕 산로(旺山路)’라고 명명한 얘기를 듣고 나는 그 순간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 왕 하얼빈의 동북열사기념관. 현재는 동북항일연군 기념관으 로 바뀌었다(박도 촬영). 허위 의병장(1855~1908) (왕산기념관 제공) 허형식 장군(1909~1942).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겸 제3군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