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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국립서울현충원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 탐방 77 (외국인까지 포함할 경우 총 16명) 에 불과했으니, 독립유공자를 모시 는 국립묘지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독립유공자 묘역에 처음 안장된 독립운동가는 철원애국단의 김재 근이었다. 김재근은 1919년 3 · 1운 동 당시에는 연희전문 학생으로 참 여했다가 옥살이를 하였으며, 대한 민국 임시정부와 연계된 철원애국 단 활동으로 4년간 또 옥살이를 한 인물이었다. 김재 근은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바뀌기 전인 1964년 3 월에 서거했다. 그럼에도 이곳에 곧바로 안장될 수 있었던 것은 1957년 1월 개정된 「군묘지령」에 ‘순국 열사’도 동작동 국군묘지에 안장할 수 있는 근거가 이미 마련되었고, 김재근이 1963년 삼일절 44주년 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표창을 받은 덕분이었다. 현재 독립유공자 묘역에는 평민의병장 신돌석과 ‘13도 창의 총대장'을 맡았던 의병장 이인영에서부 터 3 · 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한 권동진, 이종일, 박동완, 이필주, 백용성 등 15위, 한국광복군 에서 활약한 신순호 · 박영준 부부에 이르기까지 국내 외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한 219위의 순국선열 과 애 국지사가 안장되어 있다. 독립유공자 묘역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무후선 열(無後先烈)제단은 해방된 지 30년이 지난 1975년 8 · 15 광복절에 즈음하여 준공되었다. 정부는 대한통 의부 군사위원장과 정의부 총사령관을 지낸 오동진,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3 · 1운동의 상징적 인물 이 된 유관순 등 104위의 위패를 준공과 함께 봉안 하였다. 이후 1991년에 김규식, 조소앙 등 납북인사 16위의 위패를 비롯하여 추가 봉안이 몇 차례 있었 고, 2020년 이후에도 서원준·안창남 등 6위의 위패 를 추가로 봉안하여 현재 무후선열제단에는 136위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이하 사진은 김학규 활영) 신돌석 의병장 묘 이인영 의병장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