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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024년 12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할아버지는 호남창의(湖南倡義)의 으뜸 의병장이신 데 후손들이 변변치 못해 현창 사업을 하지 못하였 다”는 말씀을 한스럽게 여러 번 하셨다. 먼저 우리 일행은 장성공원에 세워진 ‘호남창의영 수 기삼연선생순국비(湖南倡義領袖奇參衍先生殉國 碑)’로 갔다. 기 전교는 왜정 시대에는 이곳에 그놈들 신사가 있었던 자리라고, 역사의 아이러니를 말씀했 다. 유형물만 자리바꿈하면 일제 잔재가 청산되는 가. 의병 후손이나 독립투사 후손이 나라의 지도자 가 되고, 이민족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린 이나 그 후손들이 지난날의 민족반역 행위를 깊이 뉘우치고 은인자중할 때라야만 명실상부한 일제 찌꺼기 청산 이요, 역사의 정의가 실현되는 게 아닐까. 우리 일행 은 순국비에 깊이 묵념을 드린 뒤 기삼연 의병장이 태어난 마을로 향했다. 기삼연 의병장 생가마을을 찾다 기삼연 의병장이 태어난 집은 전라남도 장성군 황 룡면 아곡리(일명 아치실) 하남마을로 장성읍에서 십리 남짓 떨어져 있는 산마을이었다. 앞장서 안내 를 하는 기우천 장성향교 전교는 마을 정비 사업 으 로 도로가 나는 바람에 옛 집을 헐고 그 자리에는 행 주(幸州) 기씨(奇氏) 재실과 관리동으로 신축했으며, 기삼연 의병장이 태어난 옛 집은 바로 그 부근에 있 었는데 폐허가 되었다고 얘기했다. 옛 집터에서 바 라본 산수가 예사롭지 않았다. 기 전교는 행주 기씨 문중 회장이지만, 집안 부끄 럽게도 한 번도 순창에 사는 기노웅 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참에 길 안내도 할 겸 동행을 자청했 다. 감히 청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 전교는 장성의 지리와 역사에 매우 밝은 분으로 순 창으로 가는 길 내내 도로 언저리 마을에 얽힌 이야 기와 인물들을 얘기해 주셔서 지루한 줄 몰랐다. 평생 농사꾼으로 살다 마침내 기노웅 씨가 사는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하리(사창마을)가 표지판에 나왔다. 마침 기노응(65) 씨가 밭에서 일을 하다가 우리 일행을 맞았다. “길도 멀고, 아는 것도 없고, 집도 누추하고….” 기노응씨는 말을 몹시 아끼는 분으로 우리 일행을 기삼연 의병장 생가 터에서 바라본 산수(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   농사꾼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기삼연 의병장 후손 (증손자) 기노응 씨(2008년 3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