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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024년 8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8월의 독립운동가 이후 1919년 3 월 아들 김구가 상하이(上海) 대 한민국 임시정 부에서 활동하 면서, 곽낙원도 1922년 상하이 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에서도 고 단한 여정은 계 속되었다. 1924 년 1월 며느리 최 준례(崔遵禮)가 사망하면서, 어 린 두 손자를 도 맡아야 했다. 임 시정부의 형편상 아들 김구에게 의탁할 수 없었던 처지라, 결국 1925년 11월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 후에도 손자들 을 키우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다. 생활도 어려웠지만, 끊임없는 감시가 그를 괴롭혔다. 1932년 이봉창·윤봉길 의거 후에는 감시가 한층 심해져, 1934년 4월 손자들을 데 리고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 남방의 자싱(嘉興)에 피신해 있던 아들 김구를 만 났지만, 함께 지낼 형편은 아니었다. 이후 줄곧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일본군을 피해 피난을 거듭했 다. 난징(南京)에서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 광둥성(廣 東省) 광저우(廣州), 광시성(廣西省) 류저우(柳州)를 거쳐 1939년 4월 다시 충칭(重慶)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때 인 후염에 걸린 곽낙원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81세 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아들 김구, 손자 김인 · 김신과 함 께한 곽낙원(앞줄 앉은이, 국립대전현충원 제공) 경남 진주시 삼현여자고등학교 구내에 설치된 곽낙원  여사 동상 인천시 남동구 인천대공원 안에 있는 김구 선생 의 모친 곽낙원 여사 동상의 모습(연합뉴스 제공).  10m 떨어진 곳에는 백범 김구 동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