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page

76 2023년 8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대한 자문을 전국대표자회의에 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것을 준비하고 지행하는 일을 주도했다. 동 시에 해체의 취지를 철저히 선전하기 위해 팜플렛을 발행했다. 이 문건은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전국대 표자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김두용이 작성했다.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는 기존 사회운동의 오류를 지적하고, 그 대신 조직 을 재편하여 일본공산당의 지도 아래 들어갈 것을 제기했다. “종래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노동계급 독자의 투쟁을 등한시하고 조선공산당의 지도 아래 에 활동하며 혹은 조선 내의 민족적 투쟁과 결합하 여 노총의 혁명적 조합투쟁을 방해했다.”라고 평가 했다. 계속해서 “종래 조선공산당의 지도 아래에 있어 특수한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 내지에서는 일본 공산당의 지도 아래 들어가 이 지배계급의 공세에 대항해야 한다. ……조 · 일 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완 전히 일치하고 임금의 차별, 민족적 차별 등의 특수 한 탄압은 일본노동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며, 일본 제국주의의 소산이기 때문에 이들 차별의 철폐는 일 본노동계급과의 협력 없이는 실현 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두용은 일본에서 노동계급의 계급적 이해를 옹호하고 권력 획득 투쟁을 수행하는 혁명적 노동단체 는 ‘전협’이기 때문에 여기에 합류하 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그는 지방에서 재일본 조선노동총동맹 가맹조합의 상황을 조사하고, 교토(京都)에서 회합을 가 졌다. 그리고 이의석, 이윤우 등과 계속 재일본조선 노동총동맹 본부와 연락을 취했다. 동시에 김호영도 오사카, 고베 등의 동지와 여러 차례 만나서 전국대 표자회의의 개최를 준비했다. 몇 차례에 걸쳐 그 날 짜를 변경한 후 회의 장소는 당일까지 위원들에게도 비밀에 부쳐졌고, 시간은 심야로 선택하는 등 치밀 한 준비 아래 열렸다. 결국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전협’에 가맹하는 방침을 전국대표자회의에서 만장 일치로 가결시켰다. 이후 김두용을 중심으로 김호영, 임철섭, 이의석 등은 도쿄에서 상임위원회를 열고,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신중앙위원회, 상임위원회의 해체와 그에 대신할 기관으로 ‘전협(全協) 조선인위 원회’의 설치를 결정했다. 이러한 해체 논의는 재일조선인 노동 대중과 괴리 된 가운데 진행되었다. 따라서 일방성과 세몰이 가 운데 하달식으로 일본전역을 풍미했다. 재일본조선 노동총동맹의 해체가 확정되는 1929년 말의 시기에 도 재일조선인의 노동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김두용은 재일조선인 민족운동의 방향 전 환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재일조 김두용이 창간을 주도한 『예술운동』 창간호(1927년 11월) 표지와 판권 부분. 김두 용이 ‘편집발행 겸 인쇄인’으로 되어있다(아단문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