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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3월의 독립운동가 76 2023년 3월 함께 구세군으로 활동 중이었다. 1919년 3월 10일 파주군 와석면 교하리 에 있는 교하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1백 여명을 이끌고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 시위는 파주의 첫 만세시위였다. 3월 25일에는 자신의 집 에서 남편 염규호, 그리고 16세의 학생 김 수덕, 24세의 청년 김선명과 함께 ‘3월 28 일 만세시위를 일으킬 테니 모두 둥글봉으 로 모이라, 만약 이에 불응하면 방화할 것 이다’라는 내용의 격문 60여 매를 인쇄했 다. 염규호가 격문 내용을 작성했고 김수덕이 등사 판을 가져와서 인쇄했다. 염규호·김선명·김창실은 격문을 당하리 일대의 주민에게 배포했다. 거사 예정일 이틀 전인 3월 26일 염규호·김창실· 김수덕과 함께 교하리에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주 동자들과 함께 7백여 명의 시위대는 와석면사무소 로 가서 유리창을 깨부수고, 면서기들에게 휴무하라 고 압박했다. 이어 주재소로 행진하던 중, 헌병의 발 포로 당하리에 사는 최홍주가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 고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 1919년 6월 3일 경 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투옥 당시 임신한 상태로 출산을 위해 잠시 가출옥했다가 1919년 11월에 재 입감되었다. 1920년 9월 25일에 만기출옥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민족운동과 사회운동 주체로서의 여성의 탄생 권애라, 심영식, 신관빈, 임명애. 유관순과 함께 서 대문감옥 여옥사 8호 감방에서 투옥 생활을 함께 했 던 4명은 기독교인이었다. 3월 초순에 여성 시위대 를 이룬 여학생 대부분도 기독교계 여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19세기부터 기독교 선교의 일환으로 여성 교육을 위해 세워진 여학교의 학생들과 교회 활동을 펼치던 여성 기독교인을 주축으로 여성들은 3 · 1운 동을 통해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주체로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들은 신여성으로서 3 · 1운동 이 후에도 활발한 현실 참여로 여성운동이 사회운동과 민족운동으로 자리 잡도록 이끌었다. 서대문감옥에 수감된 임명애 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