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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⑫ 75 두세 배나 더 걸리고, 집필도 다른 어느 글보다 힘들 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후손을 수소문해서 만나는 일이었다. 전남 장성 기삼연(奇參衍)의 증손 기노웅 씨도 그 가운데 한 분이었다. 내가 전화로 두 차례나 뵙기를 청했지만 당신은 할아버지에 대해 크게 아는 것도 없고, 별로 할 말도 없다고 정중히 사양했다. 그 래서 기삼연 의병장 부대의 선봉이었던 김태원 의병 장 손자 김갑제 씨에게 부탁했다. 기삼연 의병장 유적지를 찾아 나서다 김갑제 씨는 기노웅 씨에게 당신네 할아버지의 지 난 인연을 말하면서 만나기를 간곡히 청하자, 그제 야 마음의 문을 조금 열었다는 전갈이 왔다. 그 소식 을 받은 나는 곧장 장성 유적지 답사를 위해 장성군 에 도움을 청했다. 기삼연 의병장은 장성 태생인데, 기노웅 씨는 순창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장성군에 서는 장성문화원에 연결해 주었고, 문화원에서는 내 가 탐방하는 날짜에 맞춰 문화해설가를 대기 시켜 놓겠다고 했다. 그래 나는 2008년 3월 7일 이른 아침 강원도 원 주에서 광주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지난해 가을부터 광주행을 여러 차례 하다 보니 그새 길도 익어지고, 지름길도 알게 되어 한결 수월했다. 12시 40분, 버스 가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자 김갑제 씨는 죽봉 김태원 의병장 외손 신재선 씨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신 재선 씨는 지난번 답사에 이어 이번에도 기사 역을 맡았다. 내가 “조상 잘못 둔 덕분으로 수고가 많다” 고 하자 오히려 “선생은 남의 조상 일에 더 수고가 많다”고 화답을 했다. 장성문화원에는 김영풍 문화원장, 이상용 유도회 장, 장성향교 기우천 전교(典校), 행주(幸州) 기씨 (奇 氏) 문중 총무 기문백씨가 우리 일행을 반겨 맞았다. 김 문화원장은 마침 기우천 장성향교 전교가 행주 기씨 문중회장으로 누구보다 기삼연 의병장을 잘 아 는 분이기에 다른 문화해설가를 제치고 모셨다고 소 개했다. 기우천 전교는 나에게 멀리서 온 진객이라 고 몹시 반기면서 환대했다. “비단 할아버지에 거적 자손이라……” 기우천 전교는 “자손들이 못 나서 보여드릴 게 별 로 없다”고 겸손해 하시면서 기삼연 의병장 유적지 안내에 앞장섰다. 안내 틈틈이 “성재(省齋, 기삼연) ‘호남창의영수 기삼연선생순국비’ (장성군 장성읍 장성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