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page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임시정부 버팀목 남편과 함께한 광복 아리랑 “홍매영” 75 의 가시밭길 그 자체였지요.” 차영조 선생은 눈물이 어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뒤늦게 받아 든 어머 니의 건국포장을 가슴에 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렸을 노신사의 모습이 그려져 필자도 가슴이 울컥했다. 홍매영, 한국독립당과 ‘한국광복군관병소비합작 사’에서 활동 홍매영 지사는 1942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한국 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한국독립운동사자료 집』(조소앙편(4), 1997)에 따르면 한국독립당 당원은 모두 5구(區)로 구분되었다. 제1구는 김구 · 이시영 · 신 익희 등 18명, 제2구 홍진 · 이광 · 이상만 등 21명, 제3 구 이청천 · 조시원 · 최용덕 등 24명이며 홍매영 지사 가 속한 제4구는 조성환 · 조소앙 · 안원생 등으로 15 명이고, 제5구는 조시제·오영선 지사 등 15명이 활 약했다. 홍매영 지사는 한편으로는 한국광복군의 생 활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광복군관병 소비합작사(이후, 유한책임 한국광복군군관소비합 작사) 사원으로 일하면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 을 헌신적으로 지원한 공적이 인정되어 건국포장을 추서받게 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충 칭에서 창설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지휘부에 해당하 는 총사령부만을 조직한 것으로 병력이 확보되지 못 한 상황에서, 우선 총사령부부터 조직한 것으로 이 후 병력이 증가함에 따라 부대로서의 조직과 체제를 갖춘다는 방침이었다. 창설 이후 광복군은 총사령 부를 중심으로 단위부대를 편성해 나가는 한편, 장 교와 사병들의 복리를 도모하기 위해 1942년 11월, ‘한국광복군관병소비합작사’를 설립했다. 당시 소비 합작사의 구성원을 ‘사원’으로 불렀으나, 오늘날의 ‘회사원’ 개념이 아니다. 이들은 총사령부 직원과 제 1지대 대원들로 구성되었다. 「유한책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관병소비합작사 사원명단」에 따르면, 총사 령부 직원이 83명, 제1지대 대원이 267명으로 모두 350명에 달했다. ‘한국광복군총사령 관병소비합작사(韓國光復軍總 司令官兵消費合作社) 문서’는 광복군의 재정문제를 밝힐 중요한 자료이다. 국가보훈처가 2001년 8월에 서야 광복군 관련 독립운동 자료 166종(1289쪽)을 홍매영 지사와 건국포장증(2018년)   한국광복군 징모처 제3분처 사진(1941.3. 중국 충칭). 아랫줄 왼쪽 부터 박찬익, 조완구, 김구, 이시영, 차리석(동그라미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