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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독립운동가 • 황진남 · 이의경(이미륵) · 김갑수 선생 75 교수가 교수형 을 당하자 이미 륵은 후버 교수 의 가족에게 도 움의 손길을 주 는 등 의리를 지 켰다. 훗날 후버 가족들은 동양인 이미륵을 “진정 한 친구이자 의 리 있는 사람”으 로 기억했다. 1948년부터는 뮌헨 대학의 동양학부에서 한국학 과 동양철학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길을 걷던 이 의경은 한국전쟁을 앞둔 1950년 3월 20일 위암으로 타계했다. 그는 그래펠핑(Gräfelfing) 공원묘지에 안 장되었다. 독일인들은 그를 진정한 휴머니스트이자 '완전한 인간'으로 기억했다. 이미륵의 인품에 매료 되어 의학에서 동양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훗날 뮌헨 대학 동양학부 교수가 된 그의 제자 볼프강 바우어 (Wolfgang Leander Bauer)는 “자기를 본보기로 삶 의 가장 고귀한 가치를 입증한 한 인간이자 작가”라 고 존경하는 마음을 전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 의 공훈을 기려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에는 건 국훈장 애족장을 서훈하였다. 재독한인학생 독립운동의 의의 독일 내 한국독립운동은 유학생들로 이루어진 ‘유 덕고려학우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3·1 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했던 젊은 지식인들로서 직·간접적으로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결 되 어 있었다. 독립운동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독일 내 에서 이들은 국제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적극 활용하였다. 각종 홍 보물을 통해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렸고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해 독립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전파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특히 이들이 제작해 배포한 「한국에서 일본의 유혈통치」와 「한국의 문제」 등의 홍보물은 유럽사회에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논리적 으로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이 펼친 독 립운동은 오늘날 재독 한인사회의 역사적 기반을 이 루고 있다. 1930년대 뮌헨 근교 그래펠핑의 이의경 집에 모인 한인 유학생 들. 앞줄 안경쓴 이가 이의경, 그 오른쪽이 화가 배운성(국립현대 미술관 김복기컬렉션 제공) 이의경(이미륵)의 자전적 소설 『압 록강은 흐른다(Der Yale Flieβt)』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