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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월의 독립운동가 • 프레드릭 에이 맥켄지 · 플로이드 윌리엄 톰킨스 · 루이 마랭 선생 75 통치하에 있는 조국의 비참 함을 알리기 위해 왔다고 전 했다. 황기환은 맥켄지가 묵 고 있는 런던대학(University College London) 인근에 한 국대표부 런던위원부의 거점 을 마련하고 대한민국임시정 부의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영국의 신문들은 “한국의 혁 명가들이 이제 이곳 런던에 본부를 세우고 있다. 런던은 세계의 선전 중심지로 성장 하고 있다”며 주목했으며, 그 후속으로 한국친우회가 결성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 러한 구미위원부의 영국 활동과 언론의 주목, 그 뒤 에는 늘 맥켄지가 있었다. 맥켄지는 1920년 4월에 발간한 ‘한국의 투쟁’을 통해 “백인은 아시아를 잃을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 졌다. 그는 “일본의 아시아 지배는 아시아라는 한계 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우려는 많은 영국 지식인의 공감을 얻었다. 그 결과 1920 년 10월 26일 런던에서 한국친우회가 창립되었다.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창립식에는 로버트 뉴만 (Robert Newman) 의원, 르웰린 윌리엄즈(Llewellyn Williams) 전 의원, 라일 새뮤엘(A. Lyle Samuel) 등 정계 인사를 비롯하여 교육자, 언론인, 종교인, 귀족 과 각계 인사 총 62명이 참석했다. 여기에서 맥켄지 는 일제의 식민정책을 비판하면서 한국의 실상을 널 리 알리고 한국인의 자유 회복을 위한 지원 등을 결 의한 뒤 간사로 활약했다. 한국친우회 결성 이후에 도 한국인의 독립을 지지하며 언론활동을 하던 맥켄 지는 1920년대 러시아의 볼셰비즘을 취재하는 등 언론활동을 이어가다가 1931년 네덜란드 제이스트 (Zeist)에서 숨을 거뒀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한국 독립을 옹호한 프랑스의 고귀한 양심, 루이 마랭 1871년 프랑스 로젠 지방의 뫼르트(Meurthe-et- Moselle)에서 태어난 루이 마랭(Louis Marin)은 탐 험가이자 인류학자이며, 정치인이었다. 로렌지역 의 중심지인 낭시의 말그랑쥬 콜라쥬(Malgrange College)를 거쳐 파리에 정착한 그는 1899년부터 그 리스, 폴란드 등의 동유럽과 러시아를 거쳐 중국 서 부까지 탐험했으며, 1901년에는 만주와 중국, 한국 지역을 여행했다. 급변하는 아시아 정세를 목도한 영국에서 한국인의 독립투쟁을 옹호한 프레 드릭 맥켄지 1920년 런던으로 가서 한국친우회 활동을  전개했던 황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