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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025년 5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그 애(김상옥 의사)가 자랄 때 온갖 고생을 했어 요. 옷 한 가지 변변한 것을 못 얻어 입히고 밥 한술 도 제대로 못 먹였으며 메밀찌꺼기와 엿밥으로 살았 지요. 어려서 공부가 하고 싶어 ‘어머니 나를 삼 년만 공부시켜 주세요’ 하던 것을 목구멍이 원수라 그 원 을 못 풀어 주었습니다. 낮에는 대장간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을 하는데 시간이 급하여 방에도 못 들 어가고 마루에서 한 숟갈 떠먹고 갈 때 그저 ‘체할라 체할라’ 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습니까?” 종로경찰서 투탄 의거 등 의열 투쟁에 앞장섰던 아들의 주검 앞에서 오열했을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 을 둔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한이 맺힌 절규이기도 하다. 김상옥 아우 김춘원도 고초 겪어 “아버지(김상옥의 동생 김춘원)는 큰아버지(김상 옥)가 의열투쟁을 하다 자결로 순국의 길을 걸으신 뒤에 수시로 경찰에 불려가서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는 밥보다 약 을 더 많이 드셨으며, 허구헌날 순사들이 집안으로 들 이닥치는 바람에 식구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 었습니다. 그러한 꼴을 안보게 하려고 아버지는 제 가 16살 때 서울에서 먼 가평땅으로 시집을 보내셨 습니다. 자식들이라도 악질순사들로부터 피해를 덜 고자하는 마음이셨을 겁니다.” 이는 김점순 지사의 손녀 김태순 여사의 말이다. “저 어릴 때만 해도 말을 안들으면 어머니는 곧잘 순사가 잡아간다라는 말을 많이 하셨습니다. 철들고 나서 생각하니 일제침략기를 살아낸 어머니의 뼈저 린 체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당시 보통학교를 다니셨는데, 그때 학 교에서는 조선말을 금지당하고 일본말로만 쓰도록 강요당했다는 말씀도 자주 하셨습니다. 빼앗긴 조국 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투사 김점순 증조할머니, 김상 옥·김춘원 형제 할아버님과 머지않아 100세를 바라 보는 노모께서 증언해 주시는 일제강점기 독립의 역 김상옥의 조선총독 암살계획에 관한 건(일본 외무성 기록, 1920.8.24) 김상옥 의사 3형제 가족(왼쪽 두번째가 김상옥 의사 부인 정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