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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있었던 안견선생 기념비 비문 판독이 힘들었었는데 다행스럽게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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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洞子安堅先生紀念碑
玄洞子 安堅先生은 韓國的 山水畫風을 창출한 朝鮮王朝 최대의 巨匠이자 新羅의 率居, 高麗의 李寧과 함께 우리나라 繪畵史上 三大家로 손꼽히는 발군의 人物이다. 世宗大王과 安平大君의 아낌을 받으며 대성했던 先生은 이미 그의 시대에 入神한 독보적 畵家로 평가되었고 東國의 顧愷之와 吳道子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이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先生의 그림을 金과 玉처럼 아끼고 보존하였다고 전해진다.
先生은 號를 玄洞子 또는 朱耕이라 하였으며 字를 可度 혹은 得守라 하였다. 옛 기록들에는 先生이 池谷사람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바 池谷은 바로 현재의 忠淸南道 瑞山郡 地谷面이다. 옛 瑞山의 학자인 韓汝賢이 그의 著書인 『湖山錄』에서 安堅先生을 本邑地谷人 이라고 못박아 기록한 것은 현대의 우리에게 값진 典據가 된다.
安堅先生은 世宗朝에 가장 뛰어난 畵員으로 성장하였으며 그후에도 文宗, 端宗, 世祖, 睿宗, 成宗 등 여러 賢王을 섬기며 활약하였다. 圖畵署의 善畵를 거쳐 畵員으로서는 처음으로 正四品 護軍의 벼슬에 이르렀다. 또한 先生의 아들인 紹禧는 成宗 9年(1478)에 親試 文科에 급제하여 成均館의 典籍을 지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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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堅先生 性이 聰敏하고 精博하였으며 옛그림을 많이 보아 그 要諦를 터득하고 여러 大家들의 좋은 점을 총합하여 自成一家하였다고 전해진다 先生은 山水画에 특히 뛰어났으나 그 밖에 肖像 花卉蘆雁樓閣馬儀仗 등에 이르기 까지 폭넓게 그렸으니 先生의 技倆이 광범하게 미쳤으며 朝野의 要請이 多大하였음을 알겠다 先生 青山白雪圖를 비롯한 수많은 得意佢을 창출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오직 夢遊桃源圖만이 日本 天理大學校 中央圖書館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夢遊桃源圖는 南平大君이 꿈에 본 桃源의 世界를 그린 것으로 世宗 29(1447) 4月 20日에 착수하여 3日만에 완성을 본 작품이다 이 作品은 堅光里의 그림과 함께 安平大君의 跋文高得宗姜碩德 鄭麟趾朴坝金宗瑞 李迹 崔恒 申叔舟 李塩河演兩處寛 金淡 朴彭年 尹子兩李芮李賢老徐居正成三問 金守溫釋卍雨 崔脩 등 혜성같은 당대 들의 詩文들이 각기 自筆로 쓰여져 있어 詩書画 三絕을 이룬 紀念碑的傑作이다
安堅先生의 음은 자자하여 當代는 물론 後代의 수많은 画家들에게도 감화를 주었다 敬 彭孫 申師任堂 鄭世光 李正相李興孝尹毅立李澄 金明國 등을 비롯한 수다한 士大夫画家畫員들이 보의 畫風是 다투어 추종하였다.
이러한 巨匠이 우리나라에서 배출되었음은 더없이 자랑스러운 일이며 그 偉業을 기리는 紀念碑가 뜻 있는 後人들에 의하여 瑞山郡 地谷에 세워지게 됨은 비록 晚時之嘆의 感은 있으나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이제 이 顯彰事業을 계기로 하여 失生의 偉業이 더욱 널리 이해되고 빛을 발하여 훌륭한 새 文化를 일구어 가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을 기대하여 마지 않는다
碑文은 安輝濬이 짓고 黄皙捧이 썼으며 彫刻은 車相權이 제작하였다. 瑞山郡守 朴隆和 安堅先生의 偉業을 기리고 傳統文化의 繼承發展을 도모하기 위하여 郡民과 뜻있는 분들의 정성을 모아 이 紀念碑를 세운다 1989年 12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