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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김상옥·김춘원 형제독립운동가 어머니 “김점순” 73 순 지사의 아들 김상옥의 동생 김춘원의 따님이다. 곧 김점순 지사의 친손녀다. 도봉구 방학동에 살고 있는 여사의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설레임보다는 아 련한 마음이 앞섰다. 김 여사님의 아드님께서 일러 준 주소인 방학동 일대는 아파트단지로 알고 있었는 데 그는 ‘단독주택’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길찾개 (내비)가 가리키는 곳은 아파트촌 가운데 섬처럼 남 아 있는 몇 가구 안 되는 오래된 주택가였다. 마루로 올라서니 김태순 여사께서 반갑게 손을 잡 으며 다과를 내놓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난 3월 25일과 26일 이틀간 필자는 용산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 로비에서 열린 ‘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및 서울의 여성독립운동가 50인 출간 기념식’에 다녀왔 었다. 시화전은 필자가 쓴 시에 한국화가 이무성 화 백의 그림 30여 점의 전시였는데, 당시 이 행사에 유 족대표로 참석한 분이 바로 김점순 지사의 손녀인 김태순 여사였다. 그런고로 이번 만남은 약 20여 일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구면인 셈이었다. “할머니(김점순 지사)가 돌아가셨을 때 노랑 저고 리에 빨간 치마를 곱게 입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철이 없어 할머니가 고운 옷을 입고 주무신다 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께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라고 해서 놀랐던 기억납니다.” 김점순 지사가 돌아가셨을 때 김태순 여사는 겨우 12살 소녀였다. 김점순 지사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1년 4월 30일 8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 었다. 일제 침략기를 온몸으로 살아낸 김점순 지사 는 남편 김귀현과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으나 큰 아들은 일찍 죽고, 독립투사였던 둘째 아들 김상옥과 막내 아들 김춘원이 독립 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는 등 불운을 겪 었다. 종로경찰서에 폭 탄을 던져 세계만방 에 조선의 독립 의 지를 떨친 김상옥 의사의 어머니 김점순 지사 는 아 들의 의열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항일투쟁 을 펼칠 수 있게 도왔다. 어릴 때부터 석전 놀이(‘석 전[石戰]’은 고구려 때부터 전해온 것으로 차전놀이 등과 함께 조선에서 하던 놀이)를 즐기던 아들이 다 칠까 늘 염려되었으나, 이것이 훗날 폭탄 투척의 원 동력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1919년 11월 무렵 김상옥이 서울에서 암살단(暗殺團)을 조 직하여 활동하다가 잡히자 인쇄용 등사판을 파괴하 여 증거를 없앴으며, 1921년 김상옥이 임시정부 군 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에 들어와 활동할 때 일본 경 찰에 탐지되자 김상옥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대신 가 족과 함께 잡혀가 고초를 겪었다. 김점순 지사, 둘째 아들 김상옥·막내 아들 김춘원 독립투사(왼쪽부터) 김태순(97세) 여사가 김점순 할머 니의 사진을 들고 있다(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