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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영은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중추원부의장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73년(고종 10)에 태어나 1940년에 사망했다. 1895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906년 동생 윤택영의 딸이 황태자비로 책봉되었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하자 조문사로 다롄[大連]에 파견되었다. 1910년 ‘합병조약’을 체결하는 어전회의에 참석해 조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가결시켰다. 국권피탈에 앞장선 대가로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었다.
출처 : 민족문화백과사전
윤덕영이 소실을 위해 지은 옥인동 윤씨가옥은 원래 옥인동 47-133에 있었던 건물로 이곳으로 이전을 하려했으나,
너무 낡아 옮길 수 없게 되자 그 양식을 본떠 새 자재로 복제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곳을 탐방후에 옥인동을 찾아서 그 흔적들을 찾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