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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교회를 중심으로 구봉교회, 산남교회, 용성교회, 와우교회, 원산리 기도처를 순회하면서 예배를 주관하고 섬겼습니다. 일제 경점기말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뤘으며, 본인의 귀한 순교를 예견도 하였습니다. 1950년 10월 24일 둘째 아들인 정인래 목사가 불감산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들의 순교 장소를 찾아서 시신을 수습하여 돌로 묻어 주었으며, 처참하게 순교한 모습을 보고 돌아와 금식기도를 하던 중 막내아들에게 "네 형이 먼저 순교한 것은 내가 가야할 길을 예비키 위해 내 앞서 갔다"라고 하였으며, 44일이 지난 후 1주일간 피해 있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던 길에 잠시 교인가정을 들렀는데 가는 길이 위험하여 만류하였으나 본인이 가야할 길입을 말하면서 교회로 향하는 도중 그만 마을 앞에서 공산군들에게 붙잡혀 군유산으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군유산 아래 마을에 살았던 주민들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정재련 전도사는 죽음 앞에서도 굴함이 없이 큰 목소리로 공산군들에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외쳤는데 마을 주민들은 공산군들의 잘못을 책망하는 소리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정재련 전도사는 스데반처럼 공산군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하면서 영광스러운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추후 2009년 12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