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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2024년 1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의 3당이 통합하여 한 국독립당으로 개편되었다. 조용제 지사는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창립한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 요원으로 활약하였다. 이 단 체는 통합된 한국독립당의 산하단체로 조직된 것이 다. 조용제 지사는 1941년 한국독립당의 충칭 강북 구당(江北區黨) 요원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 하였으며, 독립운동가 자녀들에게 우리말과 독립정 신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했다. 또한 1943년 2월 충 칭에서 한국애국부인회의 재건 움직임이 일자 재건 요원으로 선임되어 전체 부녀자들의 각성과 단결을 촉구하며 여성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한국애국부 인회는 나라 안팎 1천 5백만 애국여성 단결의 상징 이며, 일본제국주의 타도와 대한독립, 민족해방을 위한 기치를 내걸고 활동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특히 한국애국부인회는 국내 각 계층의 여성, 우 방 각국의 여성 조직, 재미여성단체와의 긴밀한 상 호관계를 통한 여성의 연대를 표방한 것이 특징이 다. 조용제 지사를 비롯한 애국부인회 여성들은 “국 내외 부녀를 총단결하여 전민족 해방운동 및 남자와 일률 평등한 권리와 지위를 향유하는 민주주의 신공 화국 건설에 적극 참가하여 공동 분투하기로 한다” 는 내용의 7개조에 이르는 강령을 만들어 활발한 사 회활동과 독립운동을 펼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했다. 조용제 지사는 두 아드님을 두었는 데 큰 아드님 김진헌(1924.12.18~1950년, 납북) 교 수와 김진섭 장군(1930.1.25~ 2017.4.18)이다. 1942년 중국 치장에서 부모님 잇달아 서거 한편, 조용제 지사의 부모님인 아버지 조정규와 어머니 박필양도 자녀들의 뒤를 따라 1932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이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 립운동의 중요 거점을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에 매진 하는 자녀들을 적극 뒷바라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조용제 지사의 부모님은 1942년 중국, 치장(綦江)에서 숨을 거두었 한국 독립요구를 위해 조직된 파리위원부 시절의 오라버니 조소앙 (동그라미 안)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기념 사진(1940.6.17). 동그라미 안이 조 용 제 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