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page
72 2024년 8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임시정부 군무총장으로 선임되어, 1924년 4 월까지 재임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유동열은 상하이에 가지 않고 서간도에서 활 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주에서 조선혁명당, 민족혁명당을 조직 하여 활동 1920년대 중반 국내외 독립운동전선에 큰 바람이 일어났다. 민족유일당운동이었다. 국 내외 독립운동자들이 대동단결하여 민족의 유일한 정당을 조직하고, 이를 중심으로 독립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었다. 상해에서 시작 된 이 운동은 만주(중국 동북지방)에서도 일 어났고, 만주의 대표적 단체인 참의부·정의 부·신민부를 통합하자는 소위 3부 통합운동 으로 전개되었다. 3부통합은 이루지 못하였 지만, 이 운동으로 인해 만주의 독립운동 세 력은 조선혁명당과 한국독립당의 양대 세력 으로 재편되었다. 유동열은 동지들과 함께 조선혁명당을 창 당하였다. 3부 통합운동이 결렬되면서, 1929 년 4월 국민부(國民府)를 결성하였다. 유동열 은 국민부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국민 부는 남만주 일대를 관할하는 일종의 행정부 였고, 그해 12월 조선혁명당을 창당하고, 당 군으로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였다. 유동열은 최동오·현익철 등과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 원이 되었다. 1931년 9월 일본군의 만주 침략사태인 ‘만 주사변’이 발발한 후 상해로 이동하였고, 이 후 중국 관내(關內)에서 활동하였다. 일본군 이 만주를 점령하면서 조선혁명당의 활동이 어렵게 되자, 임시정부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 해 최동오와 함께 상해로 왔다. 이때 상해에 서 중국과도 공동전선을 이루고자 중국측 인 유동열의 귀국을 알리는 기사(자유신문 1945년 11월 26일 자) 유동열의 미군정청 통위부장 선임을 알리는 기사(동아일보 1946년 6월 12일 자, 이상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