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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dam!! 자고 일어나면 주인이 바뀐 치열한 전투 함안 서북산지구전투 1950년 8월 1일 북한군 제6사단은 남침 36일 만에 진주를 점령한 데 이어 마산 방면으로 진격했다. 제6사단장 방호산은 중국에서 항일 활동을 하고 수련 유학까지 다녀온 북한군 내 뛰어난 전술가였다. 중국국공내전에 참전한 조선족으로 구성된 제6사단은 전쟁경험이 풍부한 저예사단으로 마산점령의 선행단계로 서북산 일대를 선점하였다. 당시 마산 및 함안 일대에는 국군및 진주에서 후퇴하는 제 제24사단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북한군 제6사단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급히 경북 상주에 주둔 중인 미 제25보병다단을 250km 넘는 마산으로 단 2일만에 이동시켰다. 이에 맞처 진주에서 후퇴한 미 제24사단도 창녕에 낙동강 방어선 진지를 구축했다, 워커장군은 '240km의 낙동강방어선의 더 이상의 철수나 후퇴는 없다. 죽음으로 지켜라(Stand or die)'고 말하며 결의를 다졌다. 이로써 마산을 점령하려는 북한과 사수하려는 경찰과 국군, 미군은 8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 함안 일대를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미군 제25사단 제24연대와 경찰부대는 십이당산에셔 여항산.필용,서북산, 야반산,옥녀봉을 잇는 능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반격에 나섰더. 해당 능선은 함안군 함안면 여항면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진전면에 위치하여 함안및 마산을 사수하는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했다. 1950년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약 45일간 서북산지구에서 벌어진 공방과정에서 고지의 주인이 19번씩이나 바뀌고 1000여명의 아군이 전사할 정도로 격렬한 공방이 전개되었다. 전투 기간 미 공군및 포병의 화력지원과 경찰부대의 분투에 힘입어 북한군 제6사단은 제13.제15연대장이 전사하고 수많은 병력및 장비를 손실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 정상은 포 사격및 공군기의 네이팜탄으로 인해 나무가 사라지고 정상높이가 낮아져 미군은 이 산을 '늙은 중머리 산', '네이팜탄 언덕'이라고 불렸으며, 경찰부대및 미군은 약 45일간의 공방전끝에 북한군 제6가단의 서북산지구 점령을 지지하여 북한군 제6단의 마산및 부산방면 침략 기도를 막을 수 있었다. 구군및 UN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으며 인천상륙작전을 위시한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도 북한군 제6사단은 서북산지구에서 소규모 저항을 지속했으며 1950년 9월 18일 남강 이북으로 철수하면서 서북산지구전투는 막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