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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2024년 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2월의 독립운동가 주지역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중국 남방의 남경 (南京)으로 이주하였다. 남경 이주 후 한국혁명당과 합당을 추진하여 1933년 신한독립당을 결성하는데 일조했다. 그 뒤 1935년 한국독립당, 신한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이 통합하여 조직된 조선민족혁명당에서 군사부 위 원과 중앙검사 후보위원 등 주요 간부로 활동했다. 1937년 2월 12일 중국 남경에서 사망하였다. 정부 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한족회 출신 이진산과 정의부 1880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난 이진산(李震山) 은 1910년대 신민회 인사들이 만주에 세운 신흥학 교를 후원하고, 1919년 4월 이상룡(李相龍) 등이 길 림성 유하현 삼원포에서 조직한 서간도 독립운동기 관인 한족회(韓族會)의 법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서간도 지역 의 원으로 윤기섭(尹琦燮)과 함께 활동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한족회의 사판사장(査判司長)이 되었다. 1921년 5월 상해에서 안창호 · 여운형 등과 함께 임시정부의 내부갈등을 비판하고 독립운동단체의 결집을 촉구하는 격문을 배포했다. 또한 윤기섭과 함께 서간도 대표로 국민대표회의 참석차 상해에 도 착하여 한성정부 조직안의 정식 승인 등을 요구했으 며, 8월에는 임시의정원 의원 홍진(洪震) 등 25명과 함께 태평양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에게 보낼 한 국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1922년 7월 각 독립운동단체의 지도자들이 국민 대표회의 소집 문제를 포함한 임시정부의 현안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한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에 서 활동했다. 또한 10월에는 국민대표회의에 서로군 정서 대표로 파견되었다. 윤덕보가 총무장으로 활동한 광정단 독립군 결사대원의 모습(독립 기념관 제공) 통의부 총장, 정의부 참모장 및 군사위원장으로 활동한 김동삼의  마 포형무소 수감시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