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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3월의 독립운동가 72 2023년 3월 시위에 나서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3 · 1운동에서 만세 시위가 절정에 이른 것은 3월 말 4월 초였다. 이화학당을 다니던 여학생 유관순 도 3월 1일 첫날 서울 시위에 참여했다. 조선총독부 가 임시휴교령을 내리자 독립선언서를 들고 귀향하 여 만세시위를 준비했다. 그리고 3 · 1운동 역사상 가 장 많은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4월 1일에 병 천면 아우내 장터의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그해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은 유관순 은 경성복심법원에 공소를 제기했다. 그리고 재판 을 받기 위해 공주감옥에서 서대문감옥으로 이감되 었다. 유관순은 서대문감옥 여옥사 8호 감방에 수감 되었다. 만세시위를 이끌다 체포되어 투옥된 이들 이 그를 맞이했다. 그들 중에는 경기 북부 지역인 개 성과 파주의 만세시위를 이끌다가 체포되어 투옥된 사람들이 있었다. 어윤희, 권애라, 심영식, 신관빈은 3월 1일 개성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3월 3일 호수돈여학교 만세시위를 모의하고 다음날까지 이 어진 만세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임명 애는 구세군으로 3월 10일 파주 최초의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개성의 첫 번째 만세시위를 촉발한 권애라, 심영 식, 신관빈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만세시위가 전국적으 로 이어진 데는 독립선언서의 조직적인 배포가 큰 역할을 했다. 천도교계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인쇄 한 독립선언서 21,000매가 1919년 2월 28일에 전 국에 배포되었다. 그날 곧바로 개성에 독립선언서를 전한 사람은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인 오화영 목사였 다. 그는 개성에 사는 동생 오은영을 통해 강조원 목 사에게 독립선언서 200매를 보냈다. 강조원은 그날 밤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 이만규, 호수돈여학교 서 기 신공량 등과 남부예배당에 모여 독립선언서 배포 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그들은 독립선언서 배포 에 합의하지 못했다. 결국 강조원의 지시로 신공량 은 독립선언서를 북부 예배당 지하실 석탄창고에 숨 겼다. 마침내 3월 1일 아침이 밝았다. 그날 오전 호수돈 여학교 부설 유치원의 교사로 있던 권애라는 독립선 언서 도착 소식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 기미가 보이 지 않자 신공량에게 그 이유를 따졌다. 그리고 신공 량을 앞세워 북부 예배당 지하실에 들어가 독립선언 네 지사가 유관순과 함께 옥고를 치른 서대문감옥 여옥사 내부 전경서대문감옥(현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여옥사 외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