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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한국애국부인회서 애국심을 일깨운 “조용제” 71 조용제 지사는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아버지 조정 규, 어머니 박필양의 6남 1녀 가운데 외동딸로 태어 났다. 아버지 조정규 선생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 夫) 조성룡의 외아들로 학덕을 겸비한 함안 조씨 가 문의 선비였다. 함안 조씨 시조 조정(趙鼎)은 고려 태 조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통일에 큰 공을 세운 개국 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이다. 조용제 지사의 둘째 오라버니 조소앙 선생은 성균 관에 최연소 나이(15살)로 입학한 뒤 황실유학생으 로 뽑혀 일본 도쿄부립제일중학교로 유학길에 나섰 다. 이후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경신학교·양정의숙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적극 참여하였다. 임시정부헌법·의정원법(議政院法) 의 기초위원과 심사위원을 거쳐 초대 국무원 비서장 을 역임한 뒤 국무위원에 선임되어 맹활약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오라버니의 영향으로 1929년 중국 으로 건너간 조용제 지사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오라버니 조소앙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에 힘썼다.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 맹 참여 독립운동 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25일 상하이에서 조직 된 민족주의 계열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정당으로 조 소앙은 백범 김구와 함께 당무 이사에 선출되었다. 이때 조소앙이 주장한 삼균주의(三均主義)를 당의 강 령으로 채택함에 따라 한국독립당은 정강을 갖춘 정 당으로서 반일적 민족운동과 무력적 파괴운동을 투 쟁방식으로 하는 혁명적 정당의 성격을 띠게 되었 다. 한국독립당은 직할 단체로 상해한인청년당 · 상 해한인애국부인회 · 상해한인여자청년동맹 · 상해한 인소년동맹을 두고 있었고, 지방조직으로 항저우(杭 州) · 상하이 · 난징(南京)에 지부를 설치하였다. 이후 1935년 7월, 한국독립당은 조선민족혁명당으로 통 폐합되었다. 사회주의계열의 김원봉과 의열단 계열 이 당을 장악하게 되자 조소앙 등은 9월 하순에 민족 혁명당을 탈당하여 1935년 9월, 한국독립당을 재건 하였다. 이때 조용제 지사도 오라버니를 도와 한국 독립당 재건에 힘을 쏟았다. 한편, 재건 한국독립당 은 1940년 5월 충칭(重慶)으로 옮긴 뒤 다시 한국국 조용제 지사(이무성 작가 그림) 오라버니 조소앙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