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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천공 김원립선생은 경주후인으로 신라 경순왕 29세손이요 이조개국공신 계림군 재숙공 휘균의 9세손이며 취수당 성진공의 제2자로 1590년 8월 2일에 탄생하셨다. 1613년 광해 폐모지변시 약관시 모자대의를 충간직소하다가 유배되었다가 인조개옥으로 복위되고 종성부사에 이르렀으며 1627년 강홍립난에 세자 남하무군호남할새 자진 배종하시다. 1636년 병자호란때 인조왕이 남한산성에 농성 항전하며 애통지소로 소모의사하니 공이 능주목사 재임시라 봉교통읍하여 분연궐기하고 창의군을 조직 인솔하여 과천에 이르러 접전하니 참수된 호병이 5,6백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통탄하도다 주병력이 아직 도달하기전에 왕이 역부족으 항복하였으니 내외협공지계가 무산되므로 땅을 치며 통분통곡하시였다. 국가대변에 비분강개하여 진충보국하고 불원가사하니 과연 의열사이시다. 능주에 상존한 선정비에 새겼으되 心如氷玉이요 德兼春秋라 하였고 선생의 후손이 이 고장에 정주번성하여 거족을 이루니 지방 고호를 공의 아호를 따라 갈천(갈내)이라 부르게 되었다. 1649년 9월 17일에 영서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