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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2025년 5월 이달의 6 · 25 전쟁영웅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도태철 중위(전투당시 계급: 소위)는 1950년 6 · 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종합학 교 제30기(통신간부후보생 제11기)로 입교하여 1951년 9월 1일 소위로 임관한 뒤 국군 제6사단 제7연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국군 제6사단은 중부전선을 담당하던 미군 제9군단의 우익 부대로서 1951년 10월 강원도 김화군 일대의 교암산과 금성 지역으로 북상 중이었다. 미 제8군 사령부는 전선을 정비하기 위해 ‘개리선(Gary Line, 6 · 25전쟁 당시 중부전 선 일대에 설정된 가상 방어선)’을 새로 설정하고 국군 제6사단에 해당 선을 확보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개리선 확보 작전은 결코 쉽지 않았다. 1951년 11월 17일 새벽, 도태철 중위는 연대의 도하 지점과 적정을 파악하라는 명령을 받고 소대원 5명과 함께 중공군이 있는 적진으로 침투했다. 그는 소대원 2명을 강변에 잔류시키고 나머지 대원들과 함께 강둑을 넘어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강둑에 설치된 중공군의 기관총 진지를 발견한 도 중위는 해당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고 소대원들에게 “이 보고서를 연대본부에 전달하라”고 지시한 뒤 더 자세한 정보수집을 위해서 홀로 적진 깊숙이 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연대에 복귀한 소대원들은 적정이 기록된 보고서를 연대본부에 전달했고, 이 를 바탕으로 국군은 신속하게 도하작전을 전개하여 중공군의 949고지 확보에 성공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141명 전사, 포로 생포 13명, 박격포와 기관총 등 다수의 장비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정부는 1952년 5월 소위에서 중위로의 1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이달의 6 · 25 전쟁영웅 (5월) 도태철 대한민국 육군 중위 6 · 25전쟁 중부전선 일대 정찰작전 크게 기여 1951년 11월 중공군 진지 정찰하다 전사 1951년 9월 국군 제6사단 제7연대 소대장 부임 글 국가보훈부 제공 국가보훈부는 1951년 11월 17 일,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에 침 투해 성공적으로 정찰 임무를 완수하고 949고지 확보에 크게 기여한 도태철 대한민국 육군 중위를 ‘2024년 5월의 6 · 25전 쟁영웅’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