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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2024년 8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너가 샌프란시스코에 체류하다가, 일본에 있 는 성성학교(成城學校)에 입학하였다. 성성학 교는 육군사관학교 입학을 위한 예비학교였 고, 이를 계기로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1902년 12월 유동열은 일본육군사관학교 기병과에 입학했다. 당시 교육기간은 1년이 었고, 그는 다음 해 11월 이갑 등과 함께 졸 업하였다. 제15기생이었다. 졸업 후 도쿄 근 위(近衛)사단에 견습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그는 일본군으로 러일전쟁에 참전하였다. 러일전쟁을 계기로 귀국한 그는 대한제국 군인이 되었다. 1904년 8월 대한제국 육군무 관학교 학도대로 보직을 받았다. 이후 1905 년 3월 육군 기병 부위(중위)로 진급하였고, 7개월 만인 10월에는 정위(대위)로 진급하였 다. 기병대 대장, 군무국 마정과장 등의 보직 을 거쳤다. 1909년 군을 떠날 때 그의 계급은 육군 참령(현재 소령)이었다. 유동열은 노백린·이동휘·이갑 등 대한제국 고위 장교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효충회(效忠 會)에 참여하는 한편, 군인으로 여러 구국운 동 단체에도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평안도· 황해도 인사들 중심으로 결성된 서우학회에 평의원을 맡기도 하였고, 당시 대표적 구국 운동 단체인 신민회에평의원으로 참여하였 다. 또 서북학회에도 관여하였고, 국채보상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유동열은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일제의 주 목과 감시를 받게 되었다. 일제의 감시가 심 고려공산당과 상해 임시정부의 연계를 소개하는 기사(동아일보 1922년 2월 4일 자) 1937년 7월 19일 임시정부의 참모총장 등 군사위원회 위원 선임 사실을 게재 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를 번역하여 보고하는 일본 문서(이상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