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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시 · 어록비 순례 -김마리아 선생 7 애국 시 〮 어록비 순례 황해도 장연군 출신으로 기 독교학교인 소래학교와 정신 여학교를 졸업했다. 일본 유 학 중 1919년 2 · 8독립선언 에 참여하고 귀국하여 3 · 1운 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6,000여 원의 군자금을 임시 정부에 전하기도 했으나, 일 본 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렀 다. 출옥 후 대한민국애국부 인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 동을 전개하던 중 다시 피체 되어 옥고를 치렀다. 혹독한 고문과 악형으로 병보석으로 풀려  난 후 1921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상하이의 대한애국부인 회 간부 · 임시의정원 의원 · 국민대표회 대표로 활동하다가 1923 년 6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파크대학 · 시카고대학원 · 뉴욕신학 교 등에서 수학하면서 1928년 근화회(槿花會)를 결성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귀국하여 원산의 마르다윌슨신학 교와 장로교여전도회 전국연합회 회장 등을 지내며 민족의식 고 취와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3월 고문 후유 증이 악화되어 평양 기독병원에서 순국하였다.  조국과 결혼한 여성독립운동가  ● 건국훈장 독립장 ● 1892년 7월 11일(음력 6월 18일) ~ 1944년 3월 13일 김마리아 선생 사진 〮 천지연 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