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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11월30일 목요일 7 (제203호) 관향조 종친회 속함대군을 비롯한 이하 6지파조,상서공 등의 추향이 지난 13 일(음10.1) 경남 함양군 읍 이은리 영명재 후원의 단소와 정면으 로 보이는 상서공 묘역에서 전국 200여 종인이 참례한 가운데 있 었다. 이날 행사는 1부 제향, 2부 상서공 신도비각 제막, 3부 총회 순 으로진행된가운데오전10시상서공묘역에서는봉행된제례는 희식현종(경북예천)의집례로원갑종손,종덕전전교,옥룡감 사순으로헌작하고성호감사의독축으로진행되었으며,11시부 터봉행된속함대군제향은해율대구향교의전국장의집례로원 환 대종회장, 문희, 노칠 현종순으로 헌작하고 진호 구소명 감사 의독축,수원,진태현종이좌우집사를각각맡았다. 이어 6지파조 까지의 제향은 소속된 종원과 각 시도종회에서 제관을맡아질서정연하게봉행되었다. 2부신도비각제막은2019년신도비를원래위치로이안하고비 각을복원키로결정하여1997년 훼철되기전의단독비락형의원 래모습으로복원하여단청하였다, 예산은군비3천3백여만원,종중부담8천8백여만원으로1억 2천1백여만원이소요되었다. 상서공 신도비는 1710년경 민진후(1659~1720) 公에게 비문을 청탁하여찬술받은후여러사정으로비석을세우지못하다1828 년민공의비문에안동김정균선생의묘비문을덧붙여신도비를 세웠다.1841년 신도비를 이은마을 입구 바위위에서 현재의 위치 로이건하여1959년신도비각을창건하였다.그리고1909년,1930 년 중수하고 1972년 보수하였으나세월의무게를이기지못해퇴 락하여 1997년 신도비를 영명재 경내로 옮기고 비각은 무너졌으 나이번이건하여비각제막식을갖게되었다. 총회에서는 박연환 회장은 신도비각 준공에 공헌한 금명건선 김정은 이사에게 감사패를 박성호 종사위원장에게 공로패를 전 달하고 격려하였으며.이임사를 통해서는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 에좌초위기에직면한신도비각건립을원만하게해결제막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지난 5년은 삼삼오오 분열되어 해 체될위기에있던대종회를결속시켜다시나아가게한어렵고도 다사다난한시간이었다.지난5년을돌아보고,차기박윤엽회장 은고령에도불구하고장학금전달및사회기여도가큰어른으로 열정을 갖고 대종회 운영에 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 윤엽 회장을 중심으로 가일층 발전하는 대종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이 임사에갈음했다. 박원갑대종손의격려사와박연탁전회장의축사가이어진가 운데 신도비 복원에 대해 자축하며 집행부에 감사하다며 격려했 다. 박성호 종사위원장의 경과보고에서 신도비와 비각관리에 최 선을 힘써주어 후손에게 더욱 자랑스럽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며신도비각의중요성을강조했다. 결산보고 및 감사보고를 원안처리하고 신임 박윤엽 회장 감사 박옥룡,박성호현종에대한승인의건은만장일치로가결되어박 윤엽 회장 취임사에서 어려운 과정에서 태어나 유복자로 힘들고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내 중등 교감으로 퇴임하여 어려운 후배들 을위해95년도부터임실등전북지역학생에게,2021년부터대종 회에서 장학금을 전달하고 함양박씨를 알리기 위해 18년째 달력 을배부했다며내년향사에는3대가족참례자와고령의종친에게 는기념품과장수상을전달등행사를다채롭 게진행하겠다며성 원을당부했다. 한편이날전달된장학금은성공회대융합자율학2학년박민규 (서울), 전북대 기계공학과 1학년 박민규(전주), 서울시립대 수 학과3학년 선규(서울),한경국립대 컴퓨터학 1학년 찬영,(서울), 아주대경영학부2학년박소현학생등5명에게각각2백만원의 장학금이전달되었다. 속함대군추향및신도비각제막식가 져 대종회정총성료,신임박윤엽회장취임븣내년향사에3대가족븡고령참여자에게선 물증정할것 상서공묘역제관,우측부터진태우집사,성호축관,원갑종손(초헌관),종덕아 헌관,옥룡종헌관,수원좌집사,희식집례순 신도비각제막에앞서기념촬영을하고있다. 좌측부터시계방향윤엽신임회 장,연탁전회장,원갑종손,연환회장,문희전북회장,성호종사위원장 박윤엽회장(앞줄가운데)이장학증서와장학금을전달하고장학생과부모를모 시고함께하고있다. 고려조 문하시랑을 역임한 휘 문길 공 (公)의시향이지난12일삼생리묘역에서 충민공·문익공 후손 주관으로 봉행되었 다. 이날 제향은 달근 충민공파 전 회장이 집례를맡은가운데국방의의무를다하고 있는박선재대령이공휴일을틈타시간을 내어 찾아와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아헌관 은충민공의후예로청주에거주하며종중 사에 매진하고 있는 용업 현종, 종헌관은 화성에 거주하며 종중사에 크게 기여하며 문익공 회장을 역임한 평현 전 회장이 각 각 헌작하고 전근 현종이 축관을 맡아 독 축했다. 초헌관은 맡은 선재 현종은 소령 으로 근무할 때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 헌 작하는등국방의무에충실하고또한타고 난 숭조심에 종중의 많은 분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문하시랑공휘문길은조적의난을평정 한공으로2등공신에책록된휘현계의아 들이다.고려말기에관직에나아가 사재감 부령(司宰監副令)을 지냈고, 지군사(知郡 事)를 거쳐 문하 시랑(門下侍郞) 에 올랐다. 그는 아들 둘 을 두었는데 함 흥차사로 유명 한 휘 순(淳)과 문익공 휘 정 (淨)을 두어 충 민공파와 문익 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충민공의 후 손들은 음성을 중심으로 의왕시 청계, 원 주등지에세거하고문익공후손들은화성 에 세거지를 두고 있다. 음성박씨문하시랑(휘문길)공시향봉행 충민·문익공파주관븣인근군부대근무박선재대령초헌관으로헌작 박선재 대령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족보 ‘忠州 朴氏內外子孫譜’와 대전뿌리공원에 제일 먼저조형물을세우는등지극한숭조심으 로종중을이끌어온충주박씨참의공종중 (장의 박경석)이 지난 13일(음10.1)과 다 음날인14일이틀간에걸쳐제향을봉행했 다. 첫날인13일오전10시부터영모재뒤편 에모셔진돈파사에서제향을봉행하고이 후참의공묘소에서우숙강릉공종회장의 집례로 계영, 종석, 기원 현종이 헌작하고 철기축관의독축으로이어진가운데좌집 사우양,우집사희진,진설봉기현종이소 임맡아 제례를 돕고 우선 현종이 직일을 맡았다. 또한 산신제에는 명기 현종이 헌 작하고중노축관이독축했다. 다음날14일강릉공의묘제는우숙회장 이집례를맡았고 계영,경석,용선현종이 각각 헌작하고대축우선,우집사봉기,좌 집사 중노, 진설 희진, 산신제 제관 지식, 축관 일수 현종이 소임을 맡아 제례를 빛 냈다. 충주박씨의 대전 입향과 중흥은 참의공 휘 진( 풂 )으로부터시작된다.참의공은관 조 휘 영(英)의 9세(世)로 개성소윤을 역 임하고 사복시정에 증직된 휘 광리(光理) 와 합천이씨(陜川李氏)의 아들 삼형제중 둘째로1366년(공민왕丙午)에태어났다. 진사(進士)가 되어 나라가 어지러워짐 을 알고 공명의 뜻을 버리고 동생 소(蘇, 판서공)와 함께 호서 덕진현 유성리에 은 거(隱居)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유 유자적(悠悠自適)하다 조선조에 이르러 사헌부 감찰에 제수되고, 이어 진해·직산 감무가 되어 많은 치적을 남기고 사후에 손자 형무(衡武)의 귀(貴)로 인하여 병조 참의(兵曹參議)에추증되었으며,본리(本 里)도솔봉(兜率峯)아래 신좌원(辛坐原) 에 예장(禮葬)되고, 참의공파(參議公派) 의문호를열었다. 부인 보안임씨(保安林氏)와의 사이에 아들 넷을 두었으니 효함(孝誠) 충함(忠 誠) 제함(悌誠) 신함(信誠)으로 문중은 크게번성하였다. 장자인휘효함의 호는청간재(廳澗齋) 로성품이청렴강직하여녹봉(祿俸)외에 는 취하지 않으니 청백함이 명성을 떨쳤 다. 세종 경술년(1430) 가을 보령에 해구 (海寇)가 침입하여 걱정거리임에도 적임 자가 없었으나 청백함으로 선발되어 부임 즉시 순찰사 최윤덕과 감사 박안신(밀양 인 규정공 后)으로 더불어 함께 성 동쪽 일 리(一里)지점당산(唐山)남쪽을살펴면 밀한 계획으로 몇 달 되지 않아 축성을 마 치니 백성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도적이 자취를 감췄다. 얼마 되지 않아 첨추(僉 樞)가 되었고 또 얼마 후 나아가서 강릉대 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가 되었다. 아 들 원직(原直)과 원창(原昌)을 두었으며 강릉공파의파조이기도하다. 강릉공묘소앞에세 워진신도비는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45년간 세종 ·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 을모셨으며신흥왕조의기틀을잡고문풍 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던 서거정(徐 居正, 1420∼1488)이 지었고, 이 신도비는 대전시 비지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충주호 둘레길에 자리하고 있어 뭇사람들 의발길을잡는다. 강릉공의 장남 영동공(휘 원직)은 사헌 부감찰과사복시주부를거쳐영동현감으 로 영동에 출수하여 크게 치적이 있어 그 사적이 영동읍지에 실려 있으며, 영동에 최초로 입향 한 입향조이다. 차남 원창은 조선성종5년(1474)구보(성화보)를수찬 (修撰) 서문을 썼으며, 성화보는 대전시 유형문화재제46호로지정되었다. 한편 이번 향사를 봉행하는 동안 우숙 회장은종원여러분에게감사의인사를잊 지않았고종원들은타고난숭조심으로보 답하는 등 이어진 제향일정에도 화기애애 한 종중원의 우애를 선조님께서도 감읍할 것으로보인다. 충주박씨‘영모재’추향봉행 충주박씨참의공묘제가지난13일봉행된가운데참례한후손들이질서정연하게선조의음덕에감사하며추원보본의정성을다하고있 다. 관조(貫祖)인부정공휘영을비롯한선대(先代)8위(位)의위패를 봉안한추원사(追遠祠)및참의공·강릉공등븣음10.1~2. 참의공의장자강릉공의묘제에참례한종원들이함께하고있다. 고려 말에 태어나 고려 사직이 장차 망 하려는 것을 보고 백씨 참의공(휘 진)과 함께 공산(공주시의 산성동에 위치한 산 이름)에 은둔하고 이조에 이르러 은산 군 사에이르렀고,증손문충공(사암박순)으 로 인해 이조판서에 추증 된 판서공(휘 소)과 그의 아들 삼형제의 시향이 지난 14 일 대전 유성구 문지동 466영사암에서 있 었다. 먼저 판서공의 제례는 열근 사무국장의 집례로 희조 종회장이 초헌관으로 헌작하 고이어희영현종의독축,하윤,상호현종 의아헌과종헌으로30여분에걸쳐진행되 었으며, 우근, 필근 현종이 좌우집사를 희 만현종이사준을각각맡았다. 이후 인흥(仁興)·예흥(禮興)·신흥(信 興) 삼형제의 제향은 열근 사무국장의 사 회로 창근, 종석, 희영 현종이 초헌, 아헌, 종헌을 희조 회장이 축관을 우근 평근 현 종이 좌우집사, 희만 현종이 사준을 각각 맡아제례를도왔다. 아침일찍 영사암을 찾은 종원들은 영사 암부근의판서공과정부인고령오씨의묘 소에 성묘하고 함경북도 함흥에 있는 휘 인흥,개성선죽교 부근의예흥,실전된 신 흥 공의 묘소를 대신하는 설단에 각각 참 배했다. 제례전 희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원 근에서 아침일찍 추원보본의 길을 걸어 온 성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판서 공과 아들 삼형제의 행장과 묘소 위치 등 을 설명하고 질서정연하게 제례에 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영사암은충주박씨판서공(휘蘇)의분 암(墳庵)으로 증손 사암 박순 선생이 선 조를 향한 지극한 숭조심으로 묘 아래에 여막을 두었 다. 이를 세상 에 전하기 로 는 사암 선생 이 산수의 기 이함을 사랑 하여 두어 칸 집을 지어 강 학의 장소로 삼아 ‘영사’라 편액 했다 하 니, 아마도 죽 을 때까지 선 조를 추모하 는 뜻을 취하여 후손으로 하여금 길이 변 함없이 선조를 생각하도록 한 것이니 후 손들의간절히흠모하는정성이깃든곳이 다하겠다. 판서공(判書公)의 아들 오형제중 장남 (휘 인흥) 셋째(휘 예흥)는 이북지역에, 다섯째(휘 인흥)은 소 재가 불분명하고 현 재 종중의 구성원은 둘째 휘 의흥(참의공 파), 넷째 휘 지흥(찬성공파)의 후예들이 대전광주전남지역에큰집성촌을이루며 각종 행사에 두루 참석 우의를 다지고 있 다. 그리고 지난 봄 문강공종회에서 회장으 로 추대된 종석 회장이 인흥(仁興)·예흥 (禮興)·신흥(信興)공의 제향에 아헌간으 로헌작했다. 종석 회장은 195 8년 2월 27일 눌재 박상 선생의 17대 손으로 태어나 조 선대학교를 졸업 했다. 현재 아세아 스텐레이져 대표, 농업회사법인서창 농부들(주)대표이 사를 맡고 있으며 서창동주민자치위원장을역임했다. 충주박씨‘영사암(永思庵)시향봉행 판서공(휘蘇)·아들인흥(仁興)·예흥(禮興)·신흥(信興)4부자븣문간공종회종석회장취임고 유헌작겸해 영사암시향이지난14일봉행된가운데판서공제향의제관이함께하고있다. 박종석문간공회장 지난해 숙원인 회관을 준공한 희조 회장이 초헌관으로 헌작 하고있다.